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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출수 없는 난폭한 무역, 그 실체는?
    사회 2017. 2. 24. 17:30

    "로지스틱스와 더불어 새로운 위기가,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이, 새로운 법의 사용이, 새로운 살육 논리가, 새로운 세계 지도가 도래한다." 


    <로지스틱스> 데보라 코웬 지음ㅣ권범철 옮김ㅣ갈무리 펴냄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인 로지스틱스(logistics). 사실 병사와 물자를 전선으로 보내는 군사술로 출발한 로지스틱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비즈니스계로 편입됐다.


    엄청난 양의 인력과 물자를 전 세계에 배치해야 했던 2차 세계대전 동안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실험됐는데, 기업은 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역 지구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으로 꼽히는 컨테이너는 2차 대전 중 미군에 의해 처음 실험됐고, 베트남 전쟁을 거쳐 표준화된 지구적 형태로 확립됐다. 


    또한 2차 대전 중 레이더망 배치, 잠수함 수색 활동 등 군사적 의사결정을 위한 작전 연구(OR)의 일환으로 개발된 총비용 분석을 통해 로지스틱스에 시스템 접근이 도입됐는데, 이를 통해 로지스틱스는 완전히 다르게 개념화됐다. 


    '기업 로지스틱스와 군사 로지스틱스는 점점 뒤얽히고 있다. 이것은 기업 무역을 위해 길을 닦는 군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군대를 활발하게 지원하는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로지스틱스는 현대전에서 가장 크게 민영화된 영역 중 하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기지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다. 여기서는 민영 기업들이 계약을 맺고 부대에 대한 급식과 숙소 공급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공적인" 군사 로지스틱스 전문가들이 사적[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순환하는 것은 대부분 로지스틱스 계약을 사적[민간] 군사 기업들로 이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군사 로지스틱스와 기업 로지스틱스의 뒤얽힘은 심화되는 그리고 변화 중인 형태일 수 있지만 로지스틱스는 전쟁의 세계에서 한 번도 낯선 것이었던 적이 없다. (최근 [사용되는] 로지스틱스의 기업 경영상 용어인) 공급 사슬이라는 언어는 로지스틱스가, 비즈니스라는 멋진 신세계에서 출현하여 군대라는 구제도를 최근에야 식민지로 만들었다고 믿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기업적 계산이 실제로 국가의 군대를 대체해 왔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로지스틱스라는 선물을 선사한 것은 전쟁이었다'(14~15쪽)


    로지스틱스는 전쟁술로서의 역사를 버리고 민간화된 것이 아니라 전쟁술과 비즈니스술이 분리불가능할 정도로 뒤얽힌 다른 무엇이 됐는데, 공급 사슬 보안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론토대학교 지리학과 부교수로 도시행동주의 연구에 참여해온 저자 데보라 코웬은 로지스틱스가 지구화를 일으키고 시간과 공간과 영토를 변형하는 현대 세계를 로지스틱스 공간의 시대로 인식할 것을 주문한다. 


    공급 사슬은 로지스틱스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인프라, 정보, 재화, 사람들로 구성되며 빠른 흐름에 집중한다. 


    즉 공급 사슬의 최대 과제는 사물을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순환시키는 것으로, 이를 위해 공급 사슬 보안의 논리를 동원해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공급 사슬 보안이란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과 그로 인한 시민과 조직된 사회의 경제적·사회적·물리적 안녕에 대한 위협을 다루기 위해 적용되는 프로그램, 시스템, 절차, 기술, 해결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은 곧 시민과 사회의 안녕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특 공급 사슬의 보안은 시민과 사회의 안녕을 보장하는 길이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선(善)이 됐다. 


    이에 따라 공급 사슬 보안은 무역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 근본적인 문제로 부상하며 공급 사슬에 대한 위협은 삶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세계를 멈출 수도 있다"


    '생식 이성애 혹은 종 전쟁의 이른바 자연성이 지닌 특징과 같은 공급 사슬 자본주의의 자연성이, 그것이 매일 대안적 신체와 방식과 형태에 가하는 폭력으로 인해 의문시될 뿐 아니라 폭로될 수 있을까? 만일 섹스와 죽음에 대한 이 "자연적" 시선이 공급 사실 자본주의의 폭력을 자연화하기 위해 전개된다면, 자연의 생식에 대한 다른 개입은 어떻게 대안적인 경제 조직 형태를 비롯한 대안적인 미래상을 배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용어로, 다른 난폭한 무역에 대한 욕망을 통해 로지스틱스에 개입할 수 있을까? "퀴어 자본주의"를 향한 노력으로 로지스틱스 공간을 교란할 수 있을까?'(325쪽)


    이 책의 본문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난폭한 무역(rough trade)'이란 말은 군사술과 비즈니스술의 양 측면을 동시에 지닌 폭력적인 로지스틱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적 은어로 널리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trade는 게이 남성의 파트너 혹은 남창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rough trade는 난폭하고 폭력적인 파트너를 말하며, 특히 대형 트럭 운전사, 건설 노동자, 부두 노동자 같은 육체 노동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순수하게 기술적인 문제로만 여겨지는 로지스틱스를 이처럼 정치적인 무대 위로 끌어올리면서, 교란 역시 정치적 전술임을 강조한다. 


    교란은 더 높은 생산성의 요구와 그에 따른 압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전술이며,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는 유럽인과 싸우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전술이다. 이 책은 그 교란의 의미와 함께할 동기를 다시 일깨워주고 부여하고 있다. 


    특히 '난폭한 무역'은 로지스틱스의 폭력적인(rough) 군사적 측면과 비즈니스적 측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여기서 군사와 민간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그 두 가지가 뒤얽힌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상품의 흐름을 최우선하는 이 네트워크 공장에서 그것을 교란하는 혹은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은 로지스틱스의 '삶'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악마화돼 폭력적으로 관리된다.


    '로지스틱스는 그것의 군사적이고 제국적이며 보다 최근에는 기업적인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 이상이다. 교육 프로그램, 전문 협회, 제도적인 전문 지식, 그리고 그것의 주되 전개장소에서, 기업적·군사적 인력과 방법은 지배적이다. 로지스틱스는 또한 생명정치적, 시신정치적, 그리고 반정치적 순환의 신자유주의적 형태들을 추동하며 여기에는 비용-편익 분석과 시장 효율성의 상정이 그 기본 기법에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과 수단이 모두 중요한 물질생활의 문제는 조직하는 "방법"을 위한 기법으로서의 로지스틱스에 대한 요구가 다른 장소에서 출현하고 있다.'(339쪽)


    이 책은 유통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며 전쟁술에 대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로지스틱스가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로지스틱스를 현대 세계의 중심적인 문제로 다루면서, 이를 통해 형성되는 전지구적인 사회적 공장의 폭력을 폭로한다.


    지데일리 손정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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