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고객들한테 심하게 시달린 날은 남편이나 애들한테 자주 짜증을 내게 돼요. 그리고 내가 손님 입장에서 식당 가서 밥 먹을 때도 서비스가 조금만 거슬려도 소리부터 지르게 되더라고요. 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성격이 변하나 봐요.”


백화점에서 5년째 일하는 어느 여성의 고백이다. 식당, 백화점, 마트, 서점, 주차장, 114, 홈쇼핑, 비행기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한 서비스를 만난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한 몸짓, 그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감정 노동은 사회의 분위기나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갑’의 요구에 따라 감정을 상품화하는 행위다. 



한국의 서비스 산업 종사자는 5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스튜어디스, 비서, 웨이트리스, 웨이터, 여행 가이드, 호텔리어, 사회복지사, 영업사원, 보험 판매인, 장의사, 목사, 놀이동산 직원, 경찰, 미용사, 간호사, 변호사 등 직간접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을 합치면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다.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감정노동자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런 감정 없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감정은 우리 생명과 같아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항상 지니는 감정이니 내 맘대로,내 생각대로 얼마든지 조절, 조종도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이 때로는 골치가 아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욱하는 통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그것 때문에 외톨이가 되기도 하고, 또 잘 되던 일이 틀어지기까지도 한다. 화를 참지 못해, 아니 조종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것이다. 긴장해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든가 명예심 때문에 혹은 남의 이목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등 감정 때문에 곤경에 빠졌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만이 갖는 다양한 감정. ‘감정’은 일견 개인의 심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감정 노동’, ‘반일 감정’과 같은 사회적 키워드를 생각하면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물성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감정 있습니까?>는 특징적인 감정들과 감정과 관련된 사회 현상들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저자들은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에 문학, 법학, 철학 등 다양한 전공의 인문학자들로, 감정을 외부의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으로 정의하고, 같은 자극에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처럼 같은 자극이라도 시대마다 사회마다 다르게 재해석돼 감정으로 표현되는 것에 주목하면서 그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지금처럼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자극들을 개별적으로 역학 조사하여 분석하는 것보다 사회 현상으로 빚어진 감정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책은 연애 감정, 혐오, 분노, 시기심, 수치심, 공포 등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감정들을 고르고 여기에 감정 코칭, 감정 방어, 감정 노동 등 현대 사회에 새로이 생겨난 감정의 모습을 보태, 감정이라는 프레임으로 현 시대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감정의 순수성을 가치로 확립하는 순간 낭만성은 감상성과 혼동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이기적 소유욕과도 쉽사리 뒤섞인다. 데이트 폭력에 나타나듯 잔인하고 이기적인 폭력 자체도 감정의 순수성으로 합리화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감정-사랑’으로 이해되는 사랑은 언제든 감정 과잉의 감상주의나 이기적 나르시시즘이나 광적인 소유욕에 불과한, 사랑을 빙자한 폭력으로 쉽게 변질되어버리는 것이다.'(102쪽)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곧 삶과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은 즉흥적이거나 병적인 것이 아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사한 흐름으로 갖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인간성의 증명인 것이다. 


책은 먼저 감정이 무엇인지, 왜 지금 감정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관해 다룬다. ‘감정 코칭’과 ‘감정 방어’와 같이 현대에 등장한 감정의 새로운 현상에서 나타나듯 주관과 예측 불가능의 영역에 속하는 감정을 일률적으로 관리하거나 거세하고 싶어 하는 현대의 무정함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래사회를 그린 많은 작품에서 감정은 통제되는 것으로 흔하게 그려진다.


현대 사회에서 ‘맥도널드화’된다고 비판받을 정도로 감정이 일원화되고 있는 양상은 육아에서의 감정 코칭, 광고나 쇼핑몰 디스플레이에서 이미지로 구현되는 상업적인 감정의 묘사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대중교통, 아파트 단지 등의 일상적인 공간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해 감정을 배제하려는 모습으로 넘쳐난다. 현대인들이 감정을 획일화하고 통제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거나 애초에 감정에 구애받는 일이 없도록 타자와 차단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감정이 사회적으로 문제적임을 반증하는 동시에 나아가 감정을 재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책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감정으로 연애 감정, 혐오, 시기심, 수치심, 공포, 분노, 애도(우울)을 꼽는다. 


우선 ‘감정’이라고 할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연애 감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통해 낭만적 사랑의 역사와 그 모습을 소개하고 사랑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꼽는다. 이에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이성과 윤리로서 지속할 수 있는 관계로서의 사랑을 제안한다. 


다음으로 가장 문제적인 감정, 혐오와 시기심을 소개한다. 혐오는 우리가 가진 감정 중 가장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단편적인 예로 이질적인 음식 문화에 대한 혐오를 살피면, 혐오는 사회적으로 탄생하는 것이며 여성을 음식으로 등치해 ‘먹는다’라고 표현해온 고전적인 은유로부터 여성 혐오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다. 


대중 매체에 아이돌, ‘먹방’, 명품 등 향유할 거리가 넘실대지만 실제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슬픈 개인들이, 타인도 향유하지 못하고 결여돼 있음을 짐작할 수 없어서 시기심을 느끼게 된다. 데이트 폭력과 같은 범죄가 근래에 폭증하고 있는 현상도 이런 시기심의 메커니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듯 부정적이고 거센 감정들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때에 병리적인 감정으로서 도려내야만 한다고 여겨지던 수치심을 재발견하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직접 가해하지 않아도 특정한 비행이 없었어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죄책감과 대별되는 수치심은 기실 상호 인정 관계 속에서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회적 감정이다. 아우슈비츠, 후쿠시마 원전, 세월호 등에서 희생을 피할 수 있었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윤리적 수치심을 지녀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감정 있습니까?> 몸문화연구소 지음ㅣ은행나무

'분노하는 자는 불합리한 상황 앞에서 질문하는 자이다. 분노하는 자는 상식적 좋음으로 통칭되는 예의범절과 효, 사회성, 효율성 등의 프레임을 깨뜨리는 이다. 즉 불합리의 원인 제공자에게 다시 질문을 건네며 이제껏 전제되어왔던 침묵의 카르텔을 부수는 이다. 혐오는 불합리의 서사를 구성하도록 한 발신인에게 상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전혀 다른 이에게로 그 부조리의 상처를 수신하도록 한다. 이에 반해, 분노는 불합리의 서사가 개인적 서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적 구조 안에서 견고화되고 전수되는가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분노라는 파토스는 부조리가 서사화되고 발신, 수신되는 양식이 어떻게 자신을 정체화하고 주체화하는 방식들을 결정하는가를 추적 가능하게 한다.'(216~217쪽)


공포와 분노는 정치적인 감정으로 해석된다. 공포정치에서 볼 수 있듯이 공포 감정이 권력과 자본이 위세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고도화된 사회에서, 공포는 권력이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매개가 된다. 


분노는 불합리한 상황 앞에서 질문하는 감정이다. 메갈리안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분노 양상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제시한 정신의 세 가지 단계 중 시스템에 굴종한 낙타 단계를 벗어나 기존의 질서에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외치는 사자 단계로 나아간 것이라고 평가된다.


세월호 이후 누구라도 언제든 상실을 겪을 수 있게 된 ‘위험 사회’에서 그 가치를 정치적으로 새로이 곱씹어야만 하는 감정도 있다. 상실로 인한 깊은 슬픔을 병적인 우울로 은폐하지 않고 잘 갈무리하기 위해 애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감정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리되고 축소되고 단순화돼 상품의 하나로 변용된 감정 노동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감정을 감추거나 가장하지 않고, 사회 현상에 대한 반응으로서 민중들이 갖게 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감정이 있음을 생각하고 인간적으로 배려하는 것. 나와 타인을 인간으로 재발명하는 것. 이같은 주장이 이 책이 제안하는 건강한 사회상을 갖추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데일리 정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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