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누굴까.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영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 책들의 저자, 바로 찰스 디킨스다.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ㅣ찰스 디킨스ㅣ김희정ㅣB612북스


영국의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꼬마 데이비’ 시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훌쩍이며 읽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아내에게 읽어주며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스프라우트 교수, 배우 미리엄 마골리스는 한술 더 뜬다. 열한 살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은 이래 “단 하루도” 디킨스를 읽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다 돼가지만 디킨스는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고조할머니와 내가 같은 작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녀의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둘 다 디킨스를 최애 작가로 꼽는다. 


이렇듯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을 사로잡는 디킨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손녀의 손녀에게로까지 이어지는 디킨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가.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은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매혹적인 디킨스의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혹자가 디킨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을 방불케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다소라도 마음이 끌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해 보는 곳이요, 나 또한 몇 년간 머물렀던 장소들에 대한 어렴풋한 감상-물에 비친 글림자에 불과한 기억-을 엮은 것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쓴 다음 이따금 편지 형식을 취해 집으로 보냈다. 이런 상황을 언급하는 이유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결점을 변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적어도 이 글이 대상을 충실히 바라보며 새롭고 생생한 느낌이 가장 선명할 때에 쓴 것임을 독자들에게 보증하기 위함이다. 글에서 공상적이고 나른한 느낌이 전해진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내가 어느 화창한 날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그 대상에 흠뻑 취해 글을 썼다고 추측할 것이고, 그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글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10쪽)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디 첸치’의 초상화를 본 후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다고 한다. 디킨스에게 이탈리아는 그런 곳이었다. 


웅장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풍경에 두근두근 가슴이 뛰면서도 묘한 무력감이나 나른함에 빠져드는 곳. 한편 화려함과 대비되는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일상은 디킨스의 가슴에서 삶과 죽음의 허무를 불러낸다. 


하지만 그는 감옥 안으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보며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뜨거운 희망을 발견한다.

  

1844년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디킨스는 리옹과 아비뇽을 지나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둘러본 뒤 로마를 거쳐 피렌체에서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디킨스는 이탈리아 주변 풍경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감탄하고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쓰러져가는 건축물들과 폐허들을 보며 삶의 참된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면서 옛 영광의 추한 진실을 대하듯 이탈리아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는 이탈리아 거리를 누비는 거지들과 부랑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종교 다툼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고, 어린아이들의 묘지들을 보며 쓸쓸히 고개를 돌린다. 


'노파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바깥세상의 모든 기억(아내, 친구, 아이, 형제)을 간직한 채 잊혀간 존재들이 머물렀던 지하 감옥을 바라보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신음을 토해내며 굶주린 채 죽어가든 곳, 하지만 나는 온통 깨지고 썩어서 저주 받은 벽과 군데군데 갈라진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승리감 비슷한 전율을 느꼈다.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기쁨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큰 업적을 남긴 영웅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 서글픈 지하 감옥에서 햇살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온갖 박해를 비추는 전형적인 빛이었다. 햇살이 지옥 같은 구덩이의 어둠을 조용하면서도 당당하게 짓밟는 모습은, 시력을 되찾은 맹인의 눈에 비친 세상처럼 여행자의 눈에 아름답게 보였다.'(41쪽)


디킨스의 소설들이 그렇듯 그는 참혹한 살인과 권력자들이 휘두른 무자비한 폭력에 여전히 분노하고, 여행지의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 그 이면에 깃든 고통을 어루만지는 대문호로서의 면모도 여준다.


무엇보다 디킨스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섬세한 표현들이 돋보인다. 그의 소설에서보다 훨씬 속도감 있고 생생한 표현들로 가득하다. 아비뇽에서 만난 도깨비 노파, 끔찍한 그림 속 장면에 견줄 만한 거지들과 부랑자들의 모습, 살인을 저지른 어느 청년의 처형 장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수많은 여관들의 수상한 분위기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령이 나올듯한 어느 저택의 풍경들은 독자들에게 그 장면을 직접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할 것이다.


'돌아볼 수 있을 때 피렌체를 돌아보고, 반짝이는 돔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그곳의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생기 넘치는 토스카나를 여행하도록 하자. 이탈리아는 기억 속에서 더욱 아름다울 테니까. 여름이 다가오고 제노바와 밀라노와 코모 호수가 우리의 등뒤 먼 곳에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만년설과 포효하는 폭포가 있는 거대한 생고타르의 험준한 암석과 근처에 산이 자리한 스위스 마을 파이도에서 쉬면서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말을 들으며, 이제 이탈리아의 모든 고통과 잘못은 애정을 담아 마음에 품고,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한 자연과 인공의 아름다움들과, 호의와 끈기와 상냥한 마음을 타고난 사람들을 기리며 이탈리아와 헤어지도록 하자. 무시와 탄압과 실정의 세월이 이들의 본성을 바꾸고 이들의 정신을 꺽고, 단결은 파멸이요 분열은 힘이라고 여기는 저열한 군주들이 조장한 가련한 지투심이 이들 국민성의 뿌리를 좀먹고 언어를 더렵혔다. 하지만 이들 마음 속의 선함은 지금도 살아 있으니 언젠가는 고귀한 사람들이 이 잿더미에서 일어나리라. 우리는 그 희망을 간직하자! 그리고 이탈리아를 더욱 가슴 깊이 기억하도록 하자. 무너진 신전의 조각마다 버려진 궁전과 감옥의 돌덩이 하나하나마다 이 나라의 시간의 바퀴는 계속 굴러간다고, 바퀴가 굴러갈수록 세상은 본질적으로 더 낫고 더 아름답고 더 관대하고 더 희망적이 된다고 끊임없이 가르치치 않는가!'(285쪽)


디킨스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수많은 꿈을 꿨다고 말한다. 그는 이탈리아 곳곳을 찾을 때마다, 폐허를 대할 때마다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폭동과 당시 주민들의 일상을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떠올린다. 


특히 '이탈리아의 꿈' 부분에서는 그의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탈리아의 꿈'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관한 글이지만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글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작가로서 상상력의 영역을 확대시키며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꿈속에서 여행하는 독특한 묘미를 선사한다.



지데일리 정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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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daily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