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걸작들로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강렬한 작품뿐만 아니라 뚜렷한 개성을 지녔던 두 사람의 삶도 지금까지 끊임없는 호기심을 불러 모은다. 


정신 분열증을 앓다 귀까지 자른 고흐와 안정된 삶을 버리고 남태평양 섬으로 떠난 고갱.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한 공동생활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굳은 신념으로 작업에만 몰두했던 이 정열의 화가들은 20세기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갱의 <레 미제라블: 베르나라의 초상이 있는 자화상>(위)와 반 고흐의 >자화상(폴 고갱에게 바침)>. ⓒ미술문화


<고흐와 고갱-고독한 영혼의 화가들>은 이 두 거장의 삶과 예술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고흐와 고갱이 남긴 대표작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어떤 기법과 의도로 그려졌는지 설명한다. 


둘 다 그림에서 색채를 가장 우선시하는 점은 같았지만 표현 방법은 달랐다. 고흐는 대비되는 강렬한 색을 주로 썼고, 고갱은 무엇보다 색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중요시했다. 저자 김광우의 해설과 함께 두 사람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각자의 개성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고흐와 고갱이 어떤 작품의 영향을 받았고, 다음 세기 회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배울 수 있다. 19세기를 풍미한 미술 사조를 비롯해 두 사람의 영향으로 탄생한 야수파, 표현주의 사조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한다.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방’ 등 고흐의 대표작과 타히티 섬 여인들을 그린 고갱의 수많은 걸작들. 자주 봐서 잘 아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까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고흐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어두운 하늘이 불안정한 화가의 정신 상태에서 기인했다는 점, 일본 판화에 매혹된 고갱이 자기 작품에도 일본 판화를 자주 그려 넣었다는 점 등은 배우지 않고서는 알기 힘든 사실이다. 


무엇보다 고흐와 고갱은 우리에게 한 쌍으로 기억된다.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한 적이 있고, 회화에 관해 논쟁하다가 서로를 미워한 적이 있으며, 쌀쌀맞은 고갱의 태도에 고흐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서 살펴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에 의해 회화가 전통과 단절되고 근대에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성격은 물과 불처럼 상반된 기질을 보였다. 고흐보다 연상이었던 고갱은 인습타파주의자였고, 냉소적이었으며, 궤변을 일삼았고, 무심한 사람이었다. 고흐에게는 북유럽 특유의 거친 면이 있었지만 천성이 열심히 노력하는 기질이었고, 동료에게 격정적인 애정을 쏟는 불같은 사람이었으며, 우정을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버림을 받게 되면 자신을 괴롭히는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알려진 바대로 고흐는 간질병을 앓았다. 간질 증세가 나타날 때면 이상한 소리를 듣고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했다. 그는 발작할 때 공간을 보았으며 그 공간은 작품에서 노란색으로 나타났다. 노란색은 고흐가 즐겨 사용한 색으로, 노란색의 상징적 의미를 알면 그의 회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격리되기 전 1888년 12월과 이듬해 초 그의 그림에서 노란색이 주로 사용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고흐는 1년 동안 요양원에 격리됐고 병세가 호전되자 파리 근교 오베르로 갔다.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동생 테오가 매달 생활비를 보내줘서다. 그러나 테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형을 부양하기 어려워졌다. 고흐는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준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결국 1890년 7월 27일 오베르 근교 성곽 뒤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고갱은 문명이 인간성을 파괴한다고 비판하면서 생의 후반을 프랑스 식민지 타히티 섬에서 지냈다. 말년에는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를 그렸는데, 이 질문은 그가 평생 자신에게 그리고 관람자에게 던진 화두였다. 그는 1903년 8일 동안 집에 혼자 있었는데 4월 30일 갑자기 어지럽고 경련이 일어나 이웃에게 도움을 청했다.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던 그는 결국 뇌일혈로 숨을 거뒀다. 


‘고흐는 고갱에게 작품 교환을 제안하였고 1888년 10월에 고갱의 <레 미제라블: 베르나르의 초상이 있는 자화상>을 받았다. 고갱은 이 자화상을 고흐에게 보내면서 그림 하단 오른쪽에 “나의 친구 빈센트에게”라고 적었고 뒤에는 장 발장이라고 적어 사회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자신을 장 발장에 비유했다. 고갱은 자신을 고뇌하는 순교자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순진한 모습의 에밀 베르나르의 초상화를 배경에 삽입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과 대조되게 하고 꽃무늬를 후광처럼 장식해 자신의 얼굴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이 자화상을 받은 고흐는 고갱이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걸 알았다. 고흐는 고갱의 얼굴에서 절망을 발견하고 자신이 있는 아를로 그를 초대하면서 그렇게 하면 "현재의 빈곤과 병에서 다소나마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아를을 시인의 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갱의 그림에 대한 답례로 고흐가 그린 <자화상똘 고갱에게 바침)>을 보면 회화에서의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수도승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자화상 모두에는 모던 아트를 위 한 수도승과 장 발장의 희생적인 열정이 있다. 두 사람의 성격은 물과 불 같아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기질이었다. 고갱은 인습타파주의자였고, 빈정대며, 냉소적이었고, 궤변을 일삼았으며, 무심한 면이 있었다. 반면 고호에게는 북유럽 사람 특유의 거친 면이 있었고, 천성이 열심히 노력하는 기질이었으며, 동료에게 격정적인 애정을 쏟는 불 같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지성이나 관망한 사물로부터가 아니라 개인적 감성에 기초해서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에 있는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요소를 찾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창작에 있어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했고 이런 점에서 서로 존경하면서도 시기했다.’(18쪽)



<고흐와 고갱-고독한 영혼의 화가들> 김광우 지음ㅣ미술문화(2018)

두 사람이 주고받은 ‘자화상’을 보면 각자의 성격과 화풍을 동시에 알 수 있다. 고갱의 ‘자화상’을 보면 성난 모습으로 고뇌에 찬 순교자처럼 표현돼 있다. 그는 자신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에 비유했다. 

사회를 위해 헌신하지만 지명수배를 피해 끊임없이 도망치는 신세였던 장 발장과 마찬가지로 본인도 회화를 위해 헌신하지만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그는 분노했다. 그는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 ‘자화상’에서 “예술가의 영혼을 타오르게 만드는 격렬한 화염을 묘사하고자 했다”고 적었다. 


‘자화상’과 편지를 받고 고흐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 고갱에게 답례로 보냈는데 ‘자화상(폴 고갱에게 바침)’이다. 고흐는 일본 판화에서 승려를 보고 자신의 머리를 깎았다. 자신이 회화의 세계에서 도를 구하는 수도승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갱은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장 발장이었고 고흐는 회화를 위해 도를 구하는 수도승이었다. 근대회화는 장 발장과 수도승에 의해서 시작됐다.


두 작가의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여러 도판을 실어 고흐와 고갱의 작품집을 연상케 한다.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습작들을 비롯한 드로잉, 밑그림, 도자기 등을 수록, 아마추어 화가에서 출발해 현대미술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지데일리 한주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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