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폐하, 경제학은 이제 망했습니다.”

 

다른 어떤 사회 과학 분야보다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평가받았던, 그 위세 좋던 경제학이 최근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하고, 사후적으로나마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놓고도 경제학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경제학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기세다.

 

이미지_ 경제학을 리콜하라, 이정전, 김영사.jpg *경제학을 리콜하라, 이정전, 김영사.

 

왜 경제학자들은 경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정진은 <경제학을 리콜하라>에서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설명이 형편없다는 비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그에 따르면, 예측력은 고사하고, 경제학자들은 일반 대중의 정서나 생각과는 아주 동떨어진 생뚱한 주장을 태연하게 늘어놓기 일쑤인지라 빈축을 사기도 한다.

 

가령, 불황으로 실업률이 25%로 상승했다고 한다면, 사회 불안은 극도에 달하게 된다. 심지어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권 붕괴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러한 사태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직후 미국에서 발생한 바 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비롯한 각종 특단인 조치를 취했으며, 온 국민의 걱정과 정치권의 몸부림이 25%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에 쏠려있을 때 유독 경제학자들은 “나머지 75%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웬 호들갑인가?”라며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은 정부의 뉴딜 정책에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선 경기가 왜 나빠졌으며, 25%의 노동자가 왜 일자리를 잃게 됐는지에 더 민감해 할 것이다.

 

지은이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일반 서민의 생활고에 무심한 태도를 취하는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부동산 투기 문제로 전국이 아우성쳐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일부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투기는 좋은 것”이라고 찬양까지 하는 형세라고 한다.

 

케인스는 알고 ‘그들’은 모르는 것

 

✔ 케인스 이전의 경제학이나 오늘날의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에 너무 집착한 결과 불확실성과 야성적 충동을 무시했기 때문에 경기 변동이나 경제 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적으로나마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다. 불확실성과 야성적 충동을 고려하지 못한 탓으로 시장의 실상을 직시할 수 없었다.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의식, 화폐 애착, 신뢰의 붕괴 등이 엄연히 시장에서 가격의 신축적 변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도, 경제학은 계속 가격의 신축성을 전제한 이론을 떠들고 있다. 불공정 거래, 회계 장부 조작, 부정부패 등이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기폭제이며, 이 결과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는데도 경제학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데엔 이러한 전제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일반 ‘서민을 걱정하는’ 경제학자였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당시 경제학자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질책하지 했지만, 한동안 경제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듯한 시늉만 했을 뿐 어느 때부터인가 외면해 버렸던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손은 다수에게 이익을 준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발은 다수의 희생 위에 소수에게 이익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만 보이지 않는 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도 작용하지만 이에 반하는 힘도 작용한다고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기업의 지대 추구 행위에 대한 그의 강한 경계심이 그로 하여금 중상주의를 그렇게 강력하게 비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떻든, 애덤 스미스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발이 모두 작동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대가들의 질책만 외면해 버린 건 아니었다. 경제학 대가들이 진정으로 주장했던 핵심은 외면한 채, 형식만을 부분 취합해 왔던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애덤 스미스 역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빼 버린 채,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외피만을 차용한 대표적인 예다.

 

어떤 사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장단점을 고루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그 사람을 더 잘 도와줄 수 있고, 그 사람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며, 그 사람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 경제학의 장점뿐만 아니라 그 약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알아야 경제학을 진정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이 자본주의 시장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명적 약점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그 치명적 약점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지은이는 “이제 경제학은 현실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를 해석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이 틀렸다면 과감하게 수정함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실질적인 경제학’ ‘현실적인 경제학’ ‘행복 친화적인 경제학’으로 거듭나야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데일리/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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