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독서와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신선한 감동을 전했던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그가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질문에 답하며, 그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펼친 것이다.

좋은 책은 우리의 영혼에 형태를 부여하고 고통에 한계를 주고 잘못된 생각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마술 피리입니다. 책은 이 시대에 모든 인류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살을 파먹는 벌레들, 즉 우리 모두 다 같이 앓고 있는 그 온갖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책은 불안과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리를 통과하는 공기의 선율과 리듬과 언어로 말함으로써,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게 합니다. 책이 불안과 고통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민음사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던지는, 독서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써먹을 데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등. 지은이는 독서 강연을 하며 숱하게 들어 왔던 이 여덟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질문들은 모두 누구나 원하는 ‘다른 삶’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아울러 누구나 그만큼 현재 삶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 하며,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지은이는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이 단순히 ‘독서의 기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가장 흔하게 던지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고, 연명하기 위해서만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지은이는 이에 대해 ‘자율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말한다. 우리가 하루 중 일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기쁨에 몰두하여 보내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내 영혼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결국 삶의 나머지 시간까지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 차이가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른하르트의 <야우레크> 등의 책과 실제로 인터뷰를 한 농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 놓는다. 이렇게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며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술’, 곧 ‘창조적 삶의 기술’을 말한다.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 삶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들에는 “사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불안한데도 계속 살아가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숨어 있다. 책 읽기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지금과 다른 삶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 모든 질문의 답이 우리 삶에 있고, 책을 잘 읽는 사람이 삶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을 이야기하는 살아있는 책 '거리의 스승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독서법 중 하나는 책에서 문자보다 삶을 먼저 읽는 것이다. 혹자는 책 읽기에서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훈련하거나 공부하기를 요구하지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독서 능력은 공감하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과 자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책과 삶에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 이 책의 운명은 언제 결정 나는가? 저자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서점에 진열했을 때? 인쇄소에 넘어갈 때? 도서관에 불이 안 날 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운명은 언제 결정되나요? 부모님이 나를 낳았을 때? 대학에 갔을 때? 취업을 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버스를 잘못 탔을 때? 그 남자에게 우산을 빌려 주었을 때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 혹은 작가가 출판한 연도, 독자가 책을 구입한 그 시기에 결판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에 결정 난다고 했습니다. 책이 완료형이 아닌 것처럼 사람 또한 완료형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입니다.

 


지은이는 또한 책에서 삶을 읽어 내는 것만큼 삶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오랫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처음엔 책에서 삶을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기술이 삶의 기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이 독서의 기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이 책에는 지은이가 말하는 ‘거리의 스승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농부 할머니이고, 가사 도우미 아줌마이며, 아흔 살이 넘은 택시 기사 할아버지다. 일흔이 넘어 시 쓰는 수업을 듣는 농부 할머니는 쓸모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밤잠을 쫓아가며 시를 읽는 시간을 보내고, 여러 풍파를 겪은 가사 도우미 아줌마는 자신이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책에서 문자로 발견하며 위로를 받는다. 아흔 살이 넘은 택시 기사 할아버지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 때문에 우수에 젖곤 하는데, 그의 모습은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라는 책에 나오는 인물과 닮았다.

지은이는 농부 할머니에게서 시간을 쓰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그대로 독서법에 적용하며, 가사 도우미 아줌마가 책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는지를 배우고 그녀의 위로법이 우리 삶에서도 필요함을 깨닫는다. 택시 기사 할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읽은 책보다 삶이 더 강렬한 모습을 띠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