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경제학이 온다]


지난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는 유럽의 재정 위기로 이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기존의 경제 질서는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신자유주의 광풍은 전 세계적으로 격차와 빈곤이라는 난제를 안겨줬다. 도대체 경제 위기는 왜 발생한 것일까. 또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혹자는 경제 위기가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고, 한편에선 시장경제에 내재한 경기순환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신자유주의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진노 나오히코 교수(도쿄대학 경제학부·대학원 경제학연구과)는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에서 현재 우리가 겪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나눔을 빼앗긴 것’에서 찾고 있다.


시장경제와 정치의 연결 지점인 재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사회는 경쟁 원리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협력 원리에 기초한 ‘나눔의 경제’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나눔의 경제는 다시 화폐 사용 여부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발성과 무상노동에 기초한 가족이나 커뮤니티, 비영리 시민조직 등의 무상 나눔의 경제가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생존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라는 나눔의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화폐를 사용하는 유상 나눔의 경제로, 통상 국가 재정을 일컫는다.


원래 재정이란 퍼블릭 파이낸스public finance의 번역어다. 퍼블릭, 즉 공公이란 사회 구성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나눔의 영역을 의미한다. 파이낸스란 화폐 현상을 의미하므로 재정이란 ‘나눔의 화폐 현상’이라고 해도 좋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나눔이 공포가 된다. 이들이 나눔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투어가 재정 위기다. 즉 재정 위기이기 때문에 나눔을 충실히 하기는커녕 축소해야 한다고 득의만면한 얼굴로 외친다. 재정의 사명은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재정 위기란 재정이 기능부전에 빠져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인식해야 한다.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 진노 나오히코, 정광민, 푸른지식


신자유주의적인 기치를 선명히 내세운 최초의 정권은 1979년 등장한 영국의 대처정권이다. 이는 1981년 미국의 레이건 정권, 1982년 일본의 나카소네 정권으로 이어졌다.


대처리즘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케인스적 복지국가를 맹비난하면서 민영화, 규제완화, 행정개혁에 의한 '최소한의 국가'를 주장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고 노동생산성은 향상되었지만, 조세개혁으로 없는 자들의 세금부담은 더욱 커졌고 부유계층의 몫을 빈곤계층에 떠넘김으로써 그들에겐 실질적인 조세인하 혜택을 선사했다, 세상은 기업파산으로 늘어난 실업자와 무너진 중소기업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그들이 자랑하는 결과물은 과감한 기술혁신에 앞장서는 기업이 아니라 100명이 해야 할 일을 50명이 감당하도록 노동자들을 혹사시킨 악덕 경영의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특정한 방향성이 없는 시장에 의해 공동체가 황폐화되고, 그 결과 경제적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를 지탱해줄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범죄의 증가는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했다.


게다가 대처를 필두로 레이건과 나카소네는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다. 그들은 시장의 확산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고, 시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악'으로 규정했다. '경제인'은 '폭력적인 정치인'과의 결혼 없이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다.


여러 나라마다 자국의 특성이 있었음에도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서로 경쟁하듯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다. 시장경제의 글로벌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를 확대하고 나눔의 경제를 해체시켜 왔다. 특히 화폐를 사용하는 나눔의 경제인 국가 재정의 역할을 사회질서 유지 정도로만 한정시켰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시장경제가 사회에 공헌한 정도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므로 공정하다고 주장하고, 누구에게도 강요당하지 않고 재화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므로 민주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시장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는 구매력에 따라 배분된다. 때문에 시장경제가 확대될수록 빈부 격차는 커지고 빈곤은 해소하기 어렵게 된다. 다시 말해 지금의 경제 위기는 ‘시장경제’의 지나친 확대로 ‘나눔의 경제’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되는 셈이다.


빈부의 양극화 현상, 무너진 중산층, 줄어들지 않는 빈곤 계층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를 극복할 처방전으로 나오히코 교수는 ‘나눔’과 ‘중용’을 제시한다. 이제까지 공업사회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일종의 ‘강도문화’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지식사회는 지식을 나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나눔’의 시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오히코 교수는 이를 위해 정치시스템에서는 재정의 사명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또 국가를 가족처럼 조직,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를 나눔의 원리에 따라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복원하는 길은?


‘절망의 악순환’을 ‘희망의 선순환’으로 반전시키는 길잡이는 두 개의 스웨덴어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옴소리omsorg와 라곰lagom이라는 두 개의 절묘한 단어다. 옴소리는 영어로 번역하면 ‘소셜 서비스social service’다. 사회복지보다도 넓은 개념으로 복지서비스에 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가 포함된다. 임금을 뺀 생활조건을 보장하는 정책 일반을 가리키는 사회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사회서비스를 뜻하는 옴소리라는 말은 원래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라는 뜻이다. 옴소리를 소개해준 스톡홀름대학의 구루베 연구원에게, “교육으로도 슬픔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즉시 “당연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복지의 ‘복福’은 행복을 뜻하고 ‘지祉’도 ‘신이 내려주신 행복’을 뜻한다. 즉 복지란 행복을 의미한다. 슬픔을 나누어 가지면 슬픔에 빠진 사람은 슬픔을 치유받고 행복해진다. 더불어 슬픔을 나눈 사람도 행복해진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삶의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옴소리를 떠받치는 사상은 ‘슬픔을 나누면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스웨덴인은 사회를 공동체처럼 조직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즉 공동체에서 구성원에게 임무를 배분하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에게도 임무를 배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는 현재 경제 위기를 극복할 길잡이로 ‘옴소리(omsorg)’와 ‘라곰(lagom)’이라는 스웨덴어 두 단어를 제시한다.

옴소리는 ‘사회서비스’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라는 뜻이다. 라곰은 ‘적당히’라는 의미로,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이 균형을 이룬 상태를 추구하는 ‘중용’을 뜻한다. 즉 ‘나눔의 경제’(옴소리)가 ‘시장경제’와 균형(라곰)을 이룰 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우리 삶에서 무상노동에 기초한 나눔의 경제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대신 가공식품을 사거나 외식을 하고, 청소나 빨래도 청소기나 세탁기를 구입해 해결하는 등 시장경제가 가정 안으로 거침없이 침투하고 있다.


과거엔 가정에서 무상노동에 종사하며 나눔의 경제를 훌륭하게 담당했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나눔의 경제가 줄어들수록 국가 재정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이러한 국가 재정이, 줄어든 나눔의 경제를 보완해 시장경제와 균형을 맞춰야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이토록 중요한 재정의 역할을 축소해왔다. 그러나 이대로는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이미 다가와 있는 지식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재정을 통한 나눔 시스템 구축’을 주장한다. 돈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인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고, 지식사회의 구성원들답게 재훈련과 재교육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나눔 시스템이 구축될 때에야 비로소 격차와 빈곤의 양산을 막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격차와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오로지 ‘나눔’에 있기 때문에 경쟁원리를 추구하는 시장경제만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협력원리에 기초한 ‘나눔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이익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협력원리는 나눔을 지탱하는 주요 논리로, 이제는 ‘나’의 이익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책은 지나친 경쟁으로 절망의 늪에 빠진 인류가 나눔을 통해 희망의 사회로 가는 데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면서 미래사회를 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글 한주연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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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daily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