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딩]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습관이 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읽었던 책을 다시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한 영문학 교수가 자신이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명문 여자대학인 웰슬리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20여 년 이상 영문학을 가르친 교수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는 1년여 간의 실험을 통해 “책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다시 책을 만든다”는 사실을 <리리딩>에서 증명해 보인다.


다시 읽기를 통해 우리는 향수를 얻기도 하고, 과거의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책과 함께 만들어간다. 우리는 책을 통해 인생 경험을 만들어가고, 그 경험을 다시 책에 투영시켜나가는 것이다.


<리리딩>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지음, 이영미 옮김, 오브제


스팩스가 대상으로 삼았던 책들은 실로 다양했다.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어린이책부터 만인의 사랑을 받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동시대 소설들, 교수로서 읽어야 하는 책과 온전히 재미를 위해 읽는 책들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사실은 놀라웠다.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라고 믿었던 책들이 유치하고 어리석게 느껴지는가 하면, 현학적이고 사변적으로 느껴졌던 책에서 진실을 담은 울림이 느껴졌다. 


수십 년 전에 읽었던 책에서 그때와 똑같은 감흥이 느껴졌고, 어떤 책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 읽는 것과도 같았으며, 어떤 책은 한때 좋아했다는 사실이 창피할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이런 과정에서 스팩스는 다시 읽기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가 책을 다시 읽을 때 ‘안전함’을 원하지만,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가라는 사실이라는 ‘안전과 변화’의 법칙이다.


어린이책을 통한 기쁨의 부활


스팩스가 다시 읽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어린이책이었다. 다시 읽기가 주는 가장 심오한 기쁨은 잃어버렸던 과거의 자아를 다시 찾는 것인데, 어린이책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섯 살에 처음으로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되돌아간다. 전학을 가는 바람에 월반한 것을 인정받지 못해 그만 학습부진아들의 반에 속하게 된 그녀는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어린이책들에서 위안을 얻었다. 신기한 모험으로 가득한 앨리스의 세계를 성인이 된 그가 다시 펼치자 그때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쁨과 더불어 자아와 정체성에 끊임없이 부딪혀 나아가는 주인공 앨리스에게서 데카르트의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는다. 또 남성 주인공들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루이스 스티븐슨의 <납치>에서는 남성중심적 모험소설이 소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읽는다.


반대로, 강의를 위해 성인이 된 뒤에 여러 번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그 책은 처음 읽었을 때 큰 기쁨을 주지만 되풀이해 읽게 되자 점차 그 매력이 상실되어간다. 등장인물들에겐 개성이나 큰 차이가 없으며, 시리즈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예측 가능해졌다.


C. S. 루이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스팩스는 도피와 위안이 돼주는 어린이책의 ‘안전함’을 다시 읽기의 유일한 보상으로 삼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세기 소설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제인 오스틴. 수많은 오스틴의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들이 오스틴의 책에서 찾는 것은 무엇일까? 스팩스가 만난 한 중국 여성은 ‘아이러니와 위트, 우아함’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모임에서 한 여성은 ‘그녀의 소설이 문명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질서정연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펼쳐지는 이 문명적 담화는 독자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정교한 플롯과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드러내주는 스타일을 통해 행복한 결혼이라는 예측 가능한 결말 속에서도 늘 새로움을 이끌어낸다.


오스틴의 책을 다시 여러 번 읽으면, 우리는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처음과는 달리 작가가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에 심어둔 아이러니와 도덕적 오류의 함정을 발견할 수 있다. 


<에마>에서 여주인공 에마가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에 독자가 동참하게 되는 심리의 정교한 과정은 처음 읽기에서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또 <오만과 편견>에서는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통해 느끼는 감정적 깊이와 교류가 문명의 토대를 제공함을 증언한다.


'읽는다'는 행위가 가진 시간성과 역사성은?


스팩스는 1950년대와 1960년대, 1970년대를 대변했던 대표작들을 선정해 당시 그 책들을 읽었을 때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살핀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킹즐리 에이미스의 <행운아 짐>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고, 1960년대의 소설은 도리스 레싱의 <황금 노트북>이며, 1970년대의 소설은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독의 <성스럽고 세속적인 사랑기계>다.


우선 1950년대의 두 작품은 ‘앵그리 영 맨’의 반항적 시기에 큰 인기를 얻었으며, 당시 저자 역시 이 작품들이 지닌 유머와 풍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다시 읽기를 통해 만난 두 작품은 그에게 더 이상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농담과 사건들은 단세포적으로 느껴지고, 매카시즘으로 대변되는 억압적 시대의 순응성에서 이탈하려는 등장인물들의 반항은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더 이상 충분치 않게 느껴진다.


이는 1960년대의 책 <황금 노트북>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주의와 냉전의 시대에 새로운 여성상을 그리려 했던 이 소설에 심취했던 스팩스는 다시 읽기에서 자아 안으로 침잠하는 그 내면성에 개탄한다. 


반면, 1970년대를 떠올리며 선택한 <성스럽고 세속적인 사랑기계>는 등장인물들이 떠안고 있는 자기 몰입과 회피, 방종을 아이러니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저자의 탁월함에서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시대별 다시 읽기를 통해 스팩스는 사회적 변화와 개인적 변화가 독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탐색하고, 당대의 들뜬 분위기를 벗어나 다른 시대에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런 의미에서 고전이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우리는 일을 위해서 읽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읽는 즐거움을 위해 읽기도 한다. 여기서 스팩스는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읽기와 ‘직업을 위한’ 읽기를 비교해본다. 즐거움을 위해 선택한 책은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튼 록>과 엘리자베스 가스켈의 <아내들과 딸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오즈의 마법사>,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다.


이를 통해 스팩스는 일정한 목적을 띠고 책을 읽을 때의 우리 마음이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책을 읽을 때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각각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이런 여러 가지 장르와 테마의 다시 읽기를 통해 스팩스는 ‘읽는다’는 행위에 내재된 시간성과 역사성에 주목한다. 이는 양피지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 문서를 썼을 때, 옛 글의 흔적이 층을 이뤄 드러나는 ‘팰림프세스트’에 비견될 수 있다.


다시 읽기는 필연적으로 시간의 경과와 그것이 지닌 의미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 즉 시간이 깨달음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거나 변했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자아에 대한 이런 발견과 통찰은 다시 읽기가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선물이라는 스팩스의 설명이다.


<사진출처 탐투스>



글 정용진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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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daily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