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주청소년은 우리의 이웃에, 학교에, 노동 공간에서도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이주민이라는 점과 나이 어린 청소년이라는 점 때문에 배려와 관심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사진_우리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ㅣ보이스프로젝트팀 지음ㅣ삶이보이는창 펴냄 이러한 이유에서 이주청소년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낯선 한국 문화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게다가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 또래 친구들에게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려운 상황을 고민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각자의 가슴속에 앞날에 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이나 외부 활동에 매진하며 살고 있다.


≪우리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는 이주청소년의 삶을 직접 듣고 기록한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이주청소년은 북한을 비롯해 태국 몽골 베트남 중국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버마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청소년들이다. 이들의 나이는 적게는 15세부터 많게는 24세까지 노동을 위해 입국한 경우부터 부모의 결혼으로 입국한 경우까지 다양한 이주 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보이스프로젝트팀은 한국 사회의 이주청소년 문제를 우려, 지난 2009년 5월부터 이주청소년의 삶을 기록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다양한 이주 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고민, 꿈을 들었다.


책에는 우선 여성결혼이민자 자녀들로 어머니가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한국에 오게 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각각 베트남과 몽골,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한국에 온 이들은 낯선 나라와 새로운 가족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류 덕분에 한국 문화와 빨리 친숙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승현이는 재중동포 3세로 어릴 때부터 조선족 학교에 다니다 왔고 한국 방송을 많이 보았던 터라 한국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서류상 ‘외국인’이었던 승현이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두 달간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가 결국 ‘화교 학교’에 가야 했다. 승현이는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말한다. “학교를 다니다가 안 다니니까 기분이 처음엔 좋았어요. 좋았는데, 괜찮았는데…. 아니에요. 안 괜찮았어요. 좀, 인생이 어떻게 된 것 같았어요.”


응아와 유리 역시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해주는 아버지 덕분에 가족 내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응아는 아직 서툰 한국어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유리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몽골 이주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전 무서워서 거기는 안 가요, 이제. 그분들 일하는 거 보면 진짜 좀 그래요. 몽골 사람들이 많이 잡혀가고 그러면서 믿음이 떨어졌다고 해야 되나. ‘사람 대우’를 안 한다는 느낌 받았어요.”

 

훈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일본이었고, 열 살까지 한국에서 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태국 외가로 보내졌다. 그리고 열일곱 살이 되어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어릴 때는 태국에 적응하느라, 지금은 다시 한국에 적응하느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 이주 노동을 하러 한국에 왔거나 이주노동자인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모두 미등록 신분이어서 한국에서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교육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기 어렵다.

 

이 중 자말은 이주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열여섯 살에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와 7년간 가구 공장에서 일을 했고, 힘들고 외로웠던 나날을 이슬람 종교의 힘으로 버텨냈다. “아는 사람도 없어요. (공장 밖으로) 왔다 갔다도 못해요. 불법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던 자말은 결국 인터뷰를 다 끝마치지 못하고 강제 출국당했다.


버마 출신의 모우냑 역시 스스로 이주 노동을 선택해 한국에 왔다. 모우냑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오히려 본국에서는 잘 몰랐던 버마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야간 근무를 하면서도 열심히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루시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서 이곳 생활이 더 익숙하다. “저는 80퍼센트가 한국인이구요, 20퍼센트가 파키스탄인이에요. 이제 좀 있으면요, 점점 앞으로 갈수록요, 90 대 10퍼센트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이제 점점 또 앞으로 가면 100퍼센트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있죠.”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미등록 신분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루시의 소망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열두 살에 몽골에서 온 미래는 이주청소년으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처음 왔을 때는 미등록 신분이었지만 부모님이 사업자 비자를 받으면서 미래도 정식 비자를 받았다. 덕분에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북에서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북한과 다른 남한의 학제 때문에 학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일은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입 검정고시를 볼 줄 알았지만 초등학교도 6개월이 모자라 중입 검정고시부터 준비해야 했다.


한편 북에서 온 청소년은 다른 이주청소년보다 훨씬 더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남한 내의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가 스스로 북에서 왔다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승호는 “북한 사람도 아닌데, 그렇다고 한국 사람도 아닌 거예요”라며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는 현아도 마찬가지다. 현아는 북에서 온 것을 언제, 어떻게 밝혀야 할지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이 크다. “일단 (북에서 온 것을) 말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어요. 친해지면 얘기해야지 (했죠). 근데 얘기를 (언제 해야 할까) 자꾸 생각해야 하니까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이나는 혼자 탈북해 남한에 입국한 ‘무연고 청소년’으로 북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온 특별한 경우다. 현재는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언니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엔 이주청소년의 긍정과 희망어린 목소리가 온전히 담겨 있다. 지은이는 “속 깊고 당당하게 미래를 그리는 이주청소년들의 목소리에서 그들의 꿈을 함께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라면서도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는 절실함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대답해줄 차례”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