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강제 노동한다. 인도에서 가난한 이들은 계급과 빚 때문에 노예로 살아간다. 동유럽의 젊은 여성들은 사창가에 팔려간다.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부모들은 반군에 자식을 빼앗긴다. 아동 노동자, 성노예, 소년병, 강제 노역자 등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_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 막는가ㅣ데이비드 뱃스톤 지음ㅣ나현영 옮김ㅣ알마 펴냄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는 현대판 노예들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다. 가난과 정치적 불안, 전쟁, 부정부패 등이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어떻게 벼랑 끝으로 모는지 말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캄보디아 난민 출신 스레이 네앙은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려가 갖은 고생 끝에 하갈 쉼터의 도움으로 이제 재봉사가 됐다. 카스트 하층 계급인 마야의 가족과 친척들은 얼마 안 되는 빚 때문에 벽돌 가마에서 강제 노동하다가 국제정의선교회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우간다의 찰스와 마가렛은 신의 저항군에 납치당해 소년병이 됐다가 구출됐다. 몰도바의 나디아는 이탈리아에 취업시켜준다는 꾐에 넘어가 인신매매됐다가 간신히 자유로워졌다.


:::킴은 지역 고등학교에 다녔고 육상부 활동을 했으며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목사에게는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킴은 하녀가 되어 요리와 청소와 다림질, 교회 정원 손질까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더구나 목사는 5년 넘게 킴을 빈번히 성적으로 학대했다.

목사는 킴이 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사정을 입이라도 뻥긋하면 인도에 있는 가족들을 감옥에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킴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견뎌야 했고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은 단순히 목사 가족이 선행을 베푼다고 믿었다. “그 사람의 속임수는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었어요. 목사는 그 지역의 유지였고 저는 운 좋게 마음씨 고운 사람의 은혜를 입은 제3세계 출신의 불쌍한 아이로 비춰졌지요.”:::



우리 자신이 이 책에 담긴 비극적 이야기의 당사자라면, 누군가 이 끔찍한 현실에서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책은 바로 이들을 돕기 위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정의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끄루 남은 인신매매된 동남아시아 아이들을 구출하는 태국 화가다. 애니 디젤버그는 태국의 성노예 여성들이 제2의 삶을 살도록 돕는 ‘야간등 디자인’의 대표다. 피에르 타미는 캄보디아 성매매 여성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하갈 쉼터의 설립자다. 게리 하우겐은 전 세계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국제정의선교회의 설립자다. 플로렌스 라코르는 월드비전의 18세 미만 소년병 재활 센터의 상담자다. 이단 라굼 루모로는 월드비전의 18세 이상 소년병 재활 센터의 책임자다. 체사레 로 데세르토 신부는 인신매매된 동유럽 여성들을 구하는 ‘레지나 파키스’의 성직자다. 루시 보르하는 페루의 거리 아이들을 돌보는 단체 ‘헤네라시온’의 대표다. 루이스 에통웨는 일곱 번이나 노예를 구한 카메론 출신의 미국인이다. 캐서린 천과 데릭 엘러먼은 현대판 지하철도 ‘폴라리스 프로젝트’의 공동 대표다. 아나 로드리게스는 ‘플로리다 인신매매 반대 연합’의 대표다.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대판 노예상인에 맞서 적극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제 캄보디아로 부름을 받은 피에르의 앞에는 또 한번의 신앙의 도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놈펜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피에르는 시립 병원에 입원한 버림받은 여인들을 찾아갔다. 하루는 간호사가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어린 소녀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군인이 프놈펜 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데려온 아이였다. 벌거벗은 채 의식을 잃은 아이는 굶주림으로 사실상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몇 시간 후에 아이는 생면부지의 이방인 피에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소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어요.” 피에르는 당시를 회상하며 비통해했다. “누구도 그 아이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요. 하느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야 내가 네 관심을 끌었느냐?’”:::



또한 우간다의 소년병을 돌보는 여성들은 LA 의류 공장의 강제 노동자들을 구출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 스위스의 기업가는 캄보디아에서 전직 성 노예들을 돕는 사업을 시작했고 미국의 법률가는 노예가 된 남아시아의 마을 주민들을 해방시키려 애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태국 북부에 사는 끄루 남은 페루 리마의 루시 보르하를 모르며 이탈리아의 체사레 로 데세르토 신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을 구한다는 특별한 사명 의식을 공유한다.


:::티나는 지난 6년 동안 워싱턴 D.C. 거리에서 성노예들을 구출해왔고 그중 3년은 폴라리스 사회봉사 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했다. “사람들은 외국인 성매매 여성을 보면 으레 강제로 그 바닥에 끌려 왔겠거니 생각하며 동정합니다.” 티나는 말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몸을 파는 미국 소녀를 보면 이렇게 생각하지요. ‘왜 저 아이는 하필 저런 선택을 했을까? 뭐,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지.’”

티나는 미국 내 인신매매 피해자의 대다수가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라고 말한다. “그 또래 아이들 중에서 하룻밤에 열 번도 넘게 강간당하는 인생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아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티나는 준엄하게 묻는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노예제에 관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연히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가 추악한 세상의 이면을 보게 돼 정의를 지키는 싸움에 뛰어들게 되었을 뿐이다. 이들은 정의가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절망을 딛고 일어서 내일을 위한 사회적 유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인 데이비드 뱃스톤은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친구 몇 명과 함께 인권 운동을 펼쳤던 결과, 개인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노예제를 끝내려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므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피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