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새롭고 위험한 국면에 들어섰다.”


사진_위기경제학ㅣ누리엘 루비니, 스티븐 미흠 지음ㅣ허익준 옮김ㅣ청림출판 펴냄.jpg 지난 5월 금융위기의 암운이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는 비관적인 전망과 경기가 회복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 무겁게 입을 뗀 이가 있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정확하게 예측하며 위기의 선지자로 추앙받아온 뉴욕대 교수 누리엘 루비니였다.


누리엘 루비니는 ‘혼돈으로의 회귀(Return to the Abyss)’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일어나는 일은 세계경제위기의 2막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면서 각국의 위기대응책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통렬히 비판했다.


≪위기 경제학≫은 누리엘 루비니가 정치경제 칼럼니스트 스티븐 미흠과 손잡고,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경제상황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경제위기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무수히 반복돼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동시에 역사 속 ‘위기 경제’의 실체를 조명하고 지난 위기들이 왜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파헤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기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책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전 세계가 궁금해 하는 그만의 경제예측을 덧붙여 족집게 경제학자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006년 9월, 지은이가 IMF 강당에 모인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소위 ‘12단계 붕괴론’으로 회자되는 경제위기 시나리오를 펼쳤을 때,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그는 위기가 서서히 오고 있는 가운데서 미국의 주택시장이 역사상 최악의 침체를 맞는 1단계를 시작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손실이 확대되고 소비자 신용부실이 초래되며, 대형은행 파산, 주가급락을 거쳐 금융기관이 강제로 청산되고 헐값에 매각되는 12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그의 12단계 붕괴론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착착 맞아 들어갔고, 전 세계의 눈은 온통 그의 입에 쏠리게 됐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위기 경제의 역사에서부터 진단과 처방전, 앞으로 글로벌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전망 등 불안한 경제상황에 나침반이 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지은이는 위기를 일컬어 ‘화이트 스완(white swan)’, 즉 백조라고 정의한다. 이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극단적으로 드물고 거의 예측 불가능하지만 게임의 결과를 바꿔버릴 만큼 중대한 현상을 ‘블랙 스완(black swan)’, 다시말해 흑조라고 지칭하며 2008년의 금융위기를 흑조현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반기를 표명한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위기란 대부분 거품경제에서 시작되는 ‘일반적이며 상대적으로 예측하고 깨닫기 쉬운 현상’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투자자가 호황기에 한몫을 보기 위해 과다한 빚을 지다 보면 거품이 이리저리 퍼져나가면서 자산가치가 올라가 신용대란을 수반하게 된다. 신용대출이 쉽게 이뤄지고 원하는 자산의 구매가 쉬워지면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빌린 돈으로 투자를 감행한다. 이러한 채무 기반의 소비 형태는 실제로 효과를 발휘해 가계저축률은 바닥을 치면서 소비는 계속 늘어가고 경제는 성장한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서 개인과 기업은 더 쉽게 돈을 빌려 더 쉽게 써버린다. 놀랄만한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품자산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되면 거품은 상승을 중단하고 일시에 재앙이 찾아온다. 이렇듯 불행한 수순은 1630년대 튤립투기사건, 1710년대 후반에 발생한 존 로의 미시시피 회사 사건, 남해포말사건, 1857년, 1873년의 위기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일컬어지는 1929년의 세계대공황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이어져왔다.


지은이는 이러한 격변을 마냥 기다리는 대신, 새로운 경제학 개념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바로 ‘위기 경제학’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위기를 통해 교훈을 얻는 한편, 최근의 위기가 과거와 다른 부분이 어디인지 눈여겨보라고 이야기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과거에는 거품조장의 촉매제가 주로 과학기술 혁신이나 특정상품 혹은 원자재의 부족현상, 새로운 해외시장의 개방이었던 데 반해, 최근에는 금융시스템 내에서 새롭게 고안된 여러 가지 기법들이라고 한다. ABS, MBS, CDO 등 그 이름조차 헷갈릴 만큼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구조화 파생상품이 그 범인이라는 것. 여기에 금융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다.


지은이는 이렇듯 최근의 위기가 과거와 달리 복잡한 원인을 가지고 독특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세계경제가 반등한 사실을 두고 섣부른 낙관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지은이는 여전한 위험과 취약성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V자형은 고사하고 정상으로 돌아온다 해도 U자형의 지루한 회복세를 띨 것이라 예측한다. 몇 년간 평균 이하의 성장세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예측의 근거로 노동시장의 조건이 열악하며, 이번 위기가 막대한 채무액에 의해 발생한 위기이기 때문에 채무를 줄이는 과정에서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계의 경상수지불균형 문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경상수지적자에 허덕이는 세계의 소비자국가들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경상수지흑자를 지속하는 세계의 생산자국가들의 생산능력이 이미 초과상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세계총수요의 회복이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전망한다.


지은이는 특히 위험한 곳으로 유로화 사용지역과 일본을 꼽는다. 이들 국가는 낮은 생산성과 고령화문제 그리고 GDP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공공부채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쉽사리 해결될만한 사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는 유럽의 통화연합 붕괴가 유럽연합 그 자체의 부분적 붕괴를 불러올 수 있으며, 통화연합을 빠져나가려 하고 다른 회원국에 대한 채무에 지급정지를 선언하려는 나라는 결국 유럽연합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적자상승과 경제의 경직현상으로 인해 한때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영광이 단숨에 스러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경고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은이는 유망한 신흥경제국 집단을 일컫는 BRIC 국가군(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한국(Korea)이 포함돼 ‘BRICK’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교한 첨단기술로 무장한 경제대국으로서 혁신적이며 역동적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이 그 이유다. 이러한 낙관적인 예측의 유일한 걸림돌이 바로 북한인데, 만일 북한이 붕괴된다면 한국은 굶주린 난민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 밖에도 지은이는 달러화의 몰락과 금값의 하락을 예견하면서 한편 새로운 거품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또 금융위기가 궁극적으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펼치고 있다.


지은이는 그러나 위기는 오지만 방법은 있다고 자신한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냉혹하다. 그는 먼저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보너스시스템을 최소 3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계산해야 하며, 그들에게 돈이나 주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기묘한 파생증권으로 보상하라고 주문한다. 나아가 특정 금융기업만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고 다른 곳은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신중한 기업에서 일하던 직원은 위험부담이 크지만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회사로 몰려가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정부에 의해 전면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지은이는 비록 앞으로의 경제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관측을 하고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는다. 위기를 개혁의 기회로 삼으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경제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걸음을 어디에서부터 내디뎌야 할지, 그 해답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