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종말> 켄 닥터 지음ㅣ유영희 옮김ㅣ21세기북스 펴냄


불과 10여년 사이, 일반인들의 정보 전달이 뉴스미디어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2010년 여름 홍수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피해 소식을 알리고 대피 방법을 전달했던 것은 다름 아닌 ‘트위터’ 사용자들이었다. 


촛불 시위가 일어날 때 사람들이 신뢰했던 매체는 입맛에 맞게 편집된 TV뉴스가 아닌 블로그 포스팅과 유튜브, ‘아프리카’와 같은 1인 미디어 방송이다. 이로 인해 과거의 저널리스트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형태가 변하면서 뉴스 산업도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뉴스 시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인터넷은 저널리즘의 족쇄를 깨트렸고, 독자 혁명을 불러왔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 걸쳐 새로운 뉴스 산업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앞으로 뉴스는 어떻게 우리의 손에 들어올까? 우리는 어떤 형태로 그 뉴스에 돈을 지불할까? <뉴스의 종말>은 경제학에 초점을 맞춰 이러한 저널리즘의 변화를 가져온 원인을 규명하면서 새로운 ‘뉴스 산업’ 모델을 제시한다.

 

하루에 몇 번이나 뉴스 기사나 블로그 포스트, 팟캐스트, 또는 다양한 종류의 웹 기사가 링크된 이메일과 트윗, 페이스북의 월 포스팅을 접하는지 생각해보라. RSS 리더는 다양한 뉴스의 시냇물을 끊임없이 흐르는 거대한 강물로 바꿔놓았다. 우리는 뉴스레터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이메일이 도착하면 휴대전화에서 정보 수신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린다.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창조하는 세계다.


책은 우선 뉴스 산업을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널리즘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신문과 TV 방송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오직 최적의 뉴스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세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뉴스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렇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은 이에 대해 ‘뉴스노믹스의 12법칙’을 제시한다.

 

책은 우선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웹의 전달능력과 콘텐츠를 만드는 뉴스 기업이 웹 방식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웹 기술이 가져온 미디어 도구(툴)의 발전은 기존의 뉴스를 인쇄와 방송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켰고, 그 변화에서 생겨난 틈새시장을 노린 또 다른 산업들을 낳았다. 


여기서 경쟁 기업보다 효율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법, 웹 뉴스와 관련된 사회적 속성을 이용하는 법, 특정 독자층을 겨냥해 초점을 맞추는 법, 또 거기에 뉴스와 관련된 ‘광고’를 파는 법을 배우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이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살아남은 ‘디지털 12기업’을 소개한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와 블로그 등을 결합하고, 통합하며 콘텐츠의 경계를 없앤 12기업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변화된 새로운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는 글을 쓰고, 당신들은 읽는다’는 구조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인 아마추어 간의 뒤집힌 관계를 살펴보고 있는 책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웹의 발전과 함께 프로에 버금가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고도의 기술을 갖춘 ‘아마추어’의 등장이었다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이제 신문사들은 높은 수준의 블로그나 커뮤니티의 콘텐츠를 가지고와 이를 인쇄 매체에 ‘역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용자 제작 콘텐츠’는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재앙을, 뉴스 산업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져다줬다. 


미디어 기업은 몸값이 높은 편집자와 기자에게 드는 비용과 아마추어들이 올리는 저렴하거나 무료인 콘텐츠 비용을 비교해 자연스럽게 기자들의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생존과 미래의 번영을 위해 사용자 제작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추세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해주듯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에만 약 1만 개의 뉴스룸 일자리가 없어졌다.

 

뉴웨스트의 조너선 웨버는 지난봄에 만났을 때 막 트위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가 재판을 보도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툴이라며 매우 놀라워했다. “늘 했던 일을 그대로 하면 됩니다. 재판장에 가지요.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죠. 그리고 재판 내용을 트윗합니다. 이건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이지요. 그건 뉴스라기보다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논평 같은 형태의 글입니다. 제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알아내서 사람들의 귓가에 속삭여 주는 사람 같군.’” 이것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뉴스란 단순한 사실을 알리는 것 이상이다. 관점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앞서 보았던 블로깅의 역할을 보면 소셜 네트워킹이 근사한 저널리즘 툴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셜 네트워킹은 저널리즘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지만 그 근간까지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들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어떤 식으로 변모해야 할까? 책은 법칙 저널리스트에게 ‘멀티태스커’가 되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기자들은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블로거이자 콘텐츠 수집가가 돼야 한다. 소셜 툴을 이용하고, 기존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하는 시대에 기자들은 점점 낙오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연장자에게 가르칠 것이 많은 역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멀티미디어로 누구나 발행인이 될 수 있고 정보와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남용되는 시대에 저널리스트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 일을 하는가이다.


독자 혁명은 사람들이 신문의 콘텐츠를 외면한 결과가 아니다. 30세 이하의 사람들에게 신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도 특별히 혐오스럽다는 반응은 없을 것이다. 신문은 단지 시대에 뒤졌을 뿐이다. 왜 그렇게 나무를 잘라내고, 종이를 운반하느라 트럭에 연료를 채우는지 그러고도 이미 지난 시점의 뉴스를 전하는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아니면 야후나 구글 검색창에 단어를 몇 개 쳐넣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뉴스나 견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데? 왜 특정 신문사나 방송사의 사이트에 가서 그 언론사의 뉴스만을 보는가? 수백 군데서 만든 뉴스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더 많은 선택권과 용이함 때문에 일어난 혁명이다.


책은 소셜 네트워크가 저널리즘의 형태를 바꾼 건 분명하지만 그 근간까지 바꾼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즉, 오랫동안 인정받아 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고결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와 발전된 검색 기능이 독자와 편집자 간의 벽, 정보 접근의 벽을 허물어뜨렸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즉 편집자가 말하는 의견이나 분석을 원한다. 즉 새로운 시대의 저널리스트들은 콘텐츠 IQ를 가진 ‘뉴스 큐레이터’가 돼야한다고 주문한다.

 

책은 새로운 뉴스 세계에서 지금의 뉴스산업이 모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주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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