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을 누린다. 그러나 평등한 결과에 대한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쩌다 우리는 그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들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그 진리를 망각할 수 있었을까?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그 꿈을 현실로 사는 데는 지름길이 따로 없다는 진리를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려면 열심히 일하고, 핵심 원칙들과 가치들을 완고하다 싶을 정도로 지키고, 무엇보다도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쉽게 이뤄지는 것은 결코 없다. 신속히 이뤄지는 것도 결코 없다.”

 

 ‘오바마의 저격수’로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이 이런 ‘반성’을 하도록 만든 것은 우선 미국의 국가부채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11조 달러. 이자만 1개월에 260억 달러다. 1년으로 치면 3000억 달러 규모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식으로 오는 2019년에는 8060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금액이면 지난해 미국의 국방부와 보훈부, 교통부, 국무부 등 예산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수치다.

 

현재로선 이렇다 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굴지의 기업인 엑슨 모빌과 제너럴 일렉트릭, 월마트, IBM이 2008년 수익을 모두 더해도 876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익에 100% 세금을 물린다 해도 1년 이자 지급에 필요한 금액의 3분의 1에도 모자란다. 원금은 차치하고 말이다. 미국 납세자들의 개인 소득세 전부를 10년 동안 몽땅 모은다 해도 국가부채를 모두 갚지 못한다. 이자를 탕감해준다 해도 실정이 이렇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 미국의 정책이 미래 세대들의 미래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이외에 또 있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기금으로 적립되지 않은 돈이 자그마치 99조2000억 달러나 된다. 이 금액을 미국 인구로 나누면 자그마치 1인당 33만 달러에 달한다. 4인 가족의 경우 130만 달러의 부담을 져야 하는 셈이다.

 

정의는 맹목적이어야 한다.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이중적일 경우 우리 사회 시스템의 생명력을 질식당하고 안전망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규칙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들 수백만 명이 그렇게 처신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지원하게 된다. 그럴 경우 규칙을 지키며 산 사람들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에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에 따른 보상을 챙기게 하는 한편으로 그 행동의 결과에 따른 피해는 입지 않도록 보살펴주는 사회시스템을 지켜보면서 올바른 사회라고 높이 평가할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조국에 대한 봉사는 풀타임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우리의 공복들을 개인적 삶으로 돌아가 터무니없는 특권을 누리지 않고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글렌 벡은 미국 재정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큰 정부에서 찾는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확대하고 정부의 역할을 최소로 줄인다는 미국의 건국이념이 200년 동안 각종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정부가 역할을 강화함에 따라 개인의 자유가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1905년을 전후해 미국을 세계 제1의 경제 강국으로 끌어올린 힘이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도록 만든 그 자유였는데, 지금은 미국 국민들이 정부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미국 민주당의 경우 원래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 반면 공화당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켰다. 그런데 왜 정부가 커지기만 했을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만 급급했던 양당 정치인들이 모두 유권자들의 표를 사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 결과 지금처럼 파산 직전 상황으로 몰리게 됐는 게 벡의 주장이다. 그런 까닭에 이젠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게 돼버렸다.

 

벡은 문제해결을 위해 우선 국민들의 반성부터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정치인들도 문제이지만, 그런 정치인들이 그 자리에 오르도록 만든 것이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양떼가 되지 말고 양치기가 되자고 권한다. 아울러 정직, 근면, 겸손, 사랑, 중용 등의 가치로 돌아가자고 한다.

 

우리는 지금 진보주의 의제의 희생양이 된 교육시스템에 다음 세대를 빼앗기고 있다. 학생들에게 기후변화와 자본주의의 악, 큰 정부의 이점을 끊임없이 주입하다 보니 역사와 읽기, 쓰기와 수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현실이 아이들에게 마취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멍해지고, 부모가 가정에서 인생의 교훈이나 생각들을 가르치려 들면 거부반응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정치 제도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전반적인 지지율이 13%도 되지 않는 의회가 현직 하원의원 95%와 현직 상원의원 88%를 재선에 성공시키는 현실만 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과 게리멘더링이 그 원인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 자리가 보장되는 왕이나 독재자들보다 더 오래 의석을 지킨 의원들이 나오기도 한다.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은 그 자리를 반세기 이상 지켰고, 하원의원 존 딘겔은 53년 동안 하원을 지키고 있다. 한편 영국의 헨리 8세가 왕좌에 올랐던 기간은 38년에 지나지 않았다. 독재자 스탈린과 레닌은 각각 29년과 7년 동안 집권했다. 버드 상원의원의 경우 심지어 49년 집권한 피델 카스트로보다도 더 오래 상원의원 자리를 지켰다.

 

때문에 벡은 정당보다 원칙을, 선거공약보다 인물을, 그 어떤 것보다 상식을 우위에 놓자고 제안한다. 아울러 케네디가와 부시가, 클린턴가와 같은 가문이 정치를 ‘가업’으로 삼지 못하도록 임기에 제한을 두자는 안도 제시한다. 이런 운동의 결과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티파티’의 지지를 받은 후보들의 대거 당선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우리 국회의원들은 슬쩍 세비를 올리고,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단체회원 후원금을 허용한다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국정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예외일 순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