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복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는 거 같다. 정당이나 연구 집단의 복지 관련 비전 발표와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 예산 증가율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사람들의 빈곤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쟁점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지_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후마니타스.jpg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후마니타스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언술, “망국적 무상 쓰나미” 및 ‘복지 포퓰리즘’이 공산주의보다 위험하다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의 발언 등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거리가 먼 ‘복지병’을 끌어와, 복지를 삶의 개선을 도모하는 실질적 정책과 전망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다룬다는 점에서 우려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복지’가 갖는 의제 설정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엿보게 한다.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언젠가부터 시민들은 비로소 국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특정 계층에게 선택적 복지를 제공하자는 주장과 모두가 복지 수혜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에서는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한번 결정된 정책이 정권 교체와는 독립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과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는 그럴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찾기 어렵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

“모든 것은 장애인의 관점으로”

 

스웨덴 사회에서 이런 문구들은 단순히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그 사회의 문화이자 규범이다.

 

스웨덴의 ‘복지국가’는 국민 삶의 구석구석에 보편주의와 평등주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해야 한다는 신념이 공유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스웨덴 복지정책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스웨덴의 복지 제도와 정책, 전달 체계 전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미래에 관한 보고서다.

 

일반적으로 복지 정책을 이야기할 때 스웨덴 사례가 빠지지 않는데, 우리의 스웨덴 사회복지 관련 연구는 조세정책이나 연금과 보험제도, 노동시장 정책과 다양한 복지 서비스 등 정책과 제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 이 책은 복지 정책이 도입되고 확대된 과정과 그 맥락을 개괄하면서, 정책에 담긴 가치와 비전, 이를 구현한 정당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단체의 역할, 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게끔 뒷받침하는 스웨덴의 합의 문화 등을 살핀다.

 

스웨덴 복지 정책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만한 ‘국민의 집’ 이념은 브란팅과 한손, 에르란데르, 팔메로 이어지는 60년 남짓 동안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가 한결같이 공유하고 실천했던 정치철학이다. 1976년 선거를 기화로 사민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고, 사민당과 보수정당이 교차 집권하는 추세는 2010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국민의 집’이란 이념은 무엇보다 분배의 형평성이 실현되는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평등과 연대, 사회 통합에 기초한 사회복지 정책,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계급투쟁이나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 집’을 함께 건설하자는 연대성 강조는 비사회주의정당이나 농민, 중산계층들과의 정치적 대화와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국민의 집’은 빈곤층과 노동계급만을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전 국민을 아우르는 포괄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복지 제도를 마련해 스웨덴 특유의 복지국가 모델을 이뤘다.

 

오늘날 스웨덴은 유감스럽게도 좋은 집이 못된다.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사회는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 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의해 좌우된다. 분에 넘치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빵 한쪽을 구걸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실직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스웨덴 노인 정책이 월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인에 관한 문제를, 사회복지 정책이 논의되던 19세기 말부터 가족 내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개인의 ‘생애 주기’적 관점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노인 문제 해결책을 시도했다. 스웨덴의 노인 정책은 한편으로 노인의 경제 문제, 서비스 문제, 거주 문제와 같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다른 한편 광역 정부와 기초 정부의 상호 보완적 행정 체계를 통해 포괄적인 효과성을 도모해 왔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국가는 보수정당의 집권 시기에도 외형적으로는 시장 원리의 도입, 민영화 등의 변화를 거쳤을지언정 보편주의적 원리만큼은 훼손하지 않았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이미 스웨덴 국가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로 정착했으며 스웨덴 사민당의 성쇠와 무관한 사안이 됐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보수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조차 이들이 집권 이후에도 스웨덴 모델을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합의에 도달한 데는, 소외되는 집단이나 계층 없이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기여했다. 특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민주주의의 정신은 공동체 내에서의 참여존중합의에 있다. 한손 총리는 스웨덴 사회에서 헌법에 의해 모든 사람의 기본권과 참정권은 마련되어 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계급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은 결코 지상에 실현된 낙원도 아니며 행복한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 복지국가를 하나하나 허물며 세계화 물결 속에 동참하는 국가는 더욱 아니다. 스웨덴은 자유연대복지환경과 같은 근대적 이상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친 여로에서 오늘도 좌우를 더듬으며 느리지만 쉬지 않는 달팽이의 행로를 계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순하고 부지런한 이 달팽이의 행로에서 21세기 인류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큰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보편주의를 기반으로 한 스웨덴의 양성 평등 정책은 물론, 장애를 입은 자의 일상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자는 정상화 원칙 역시 시혜적 복지 서비스가 아닌 스웨덴이 지닌 민주주의적 복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인의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올바른 지혜와 판단력을 구사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교육 정책, 건강상 문제가 또 다른 불이익을 낳지 않게 하는 보건 의료 정책, 사회적 주택 정책과 직업교육에 중점을 둔 노동시장 정책과 지속 가능한 생태 환경과 자원 유지를 위한 환경 정책까지도 계층 간, 세대 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민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웨덴식 보편적 복지 정책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철학이며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책은 보편주의적 복지 모델을 발전 지속해 온 스웨덴의 사회정책을 소개하고 이를 실현하고 집행하는 행정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사회적 돌봄이 우선시되는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정책의 역사적 배경, 형성 과정, 내용을 소개한다. 아울러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인프라로서 교육 정책, 주택 정책, 보건 의료 정책, 노동시장 정책, 환경 정책을 소개한다. 특히 가족 중심의 대상별 복지 정책과 주택 정책에 관해서는 이해 단체나 대중운동의 활동 내용과 역할까지 깊숙이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