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서는 나날의 삶이 지닌 정서적 차원과 인간관계 차원에 관심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낸다. 왜나면 우리는 이 두 차원이 삶의 초석이며 모든 앎의 초석이기도 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당신의 일반적인 생각은 어떤가. 아이들과 어른들이 분리된 채 ‘아이들의 삶을 다루는 어른들끼리의 일’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지_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공양희, 민들레.jpg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그릴아노/공양희, 민들레.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지난 1969년 세워진 학교, 전혀 학교 같지 않은 학교인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삼십 년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온 지은이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경험한 이야기다.

 

책은 교육에 대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경험을 통해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보다 높은 차원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성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학교고 마찬가지다. 삶의 기술이 위에서 아래로 전수되는 기술 전수장이나 사회적 인간을 ‘스쿨링’ 해내는 교육장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라 불리는 어른과 아이가 저마다 동등한 개인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공동체가 바로 학교로서의 존재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무심해선 안 된다

‘씨앗’을 키우고 보호하는 일에

 

프리스쿨에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늘 배우는 학생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이끌며 앞서 나아가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유연하게 열려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온갖 아이들이 보여 주는 엄청난 다양성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성을 구사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모험이기도 하다. 이에 견주면 우리의 일반적인 고육체제는 얼마나 안전한가? 그 체제 안에서 교사가 하는 일이란 아이들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그 순응도를 측정하며,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비난을 퍼부어 대는 것 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와는 달리 프리스쿨의 교사들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더불어 순간 순간을 살아야하고 서로 다른 발달과정 속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요구에 맞추어 대처해 나가야만 한다. (조셈 칠턴 피어스의 말 가운데)


이 책은 단순히 어떤 학교에 대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새로운 배움의 길로 안내한다. 밖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안으로는 자신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를 창조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이로써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기에서 공부할 때, 그리고 지성일 있고 책임 있는 존재로 존중받을 때, 바깥 세계와 격리되지 않은 활기 넘치고 사랑으로 충만하며 즐거움에 넘치는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활동하고 질문할 수 있는 자유 속에 있을 때, 가장 훌륭하게 배운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학교’라는 조직 패턴을 필요로 할까? 절대로 아니다.


이 책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새로운 배움의 마당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삼십 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 온 삶의 향기가 녹아 있다.

 

특히 지은이가 책에서 제시하는 교육과 학교에 관한 쟁점들은 비단 아이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삶을 구성하는 쟁점들로서, 새롭게 삶에 부딪히는 아이들의 신선한 경험을 통해 더 절실하고 분명하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