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거대한 산맥과 같았던 존재, 20세기 전반의 미국의 대표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월트 휘트먼. 그의 시집 <풀잎>은 1855년에 자비로 출판한 이후 사망하던 해인 1892년까지 약 4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끊임없이 수정, 확대된 역사적인 시집이다.

 

*풀잎, 월트 휘트먼/허현숙, 열린책들.

 

당대 미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던 주류의 믿음이나 신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산문의 문장을 열거해 놓은 듯 한 자유시의 형식을 선구적으로 보여 준 이 첫 시집으로 휘트먼은 ‘새로운 숲을 이룬 사람’ ‘진정한 미국인의 이름을 갖게 된 첫 번째 시인’이라고 평가받았다.

 

이 책은 12편의 시와 서문이 담긴 초판의 완역본으로,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 Celebrate myself’라는 이름난 시구로 시작되는 대표작 <나 자신의 노래>, 육체에 대한 거침없는 찬양으로 당대에 외설적이라고 평가받은 <나는 전기 띤 몸을 노래한다>를 비롯한 시들이 담겨 있다.

 

나는 영원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내 표식은 비옷과 좋은 신발과 숲에서 자른 지팡이다,

내 친구 중 누구도 내 의자에서 편치 않다,

나는 의자도 교회도 철학도 없다,

나는 저녁 식탁, 도서관, 대화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의 남자와 여자들을 나는 작은 언덕으로 이끈다,

내 왼손은 당신의 허리를 빙 두르고,

내 오른손은 대륙의 풍경들과 평평한 대로를 가리킨다.

나도, 다른 누구도, 당신을 위해 저 길을 여행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그 길을 여행해야 한다.

(…)

충분히 오랫동안 당신은 경멸받을 만한 꿈을 꾸어 왔다,

이제 내가 당신의 눈에서 눈곱을 씻어 주니,

당신은 눈부신 빛과 당신 삶의 모든 순간으로 당신 자신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이미 오랫동안 당신은 흐릿하게 시들어 왔다, 해안가에서 널빤지 하나 붙들고.

이제 내 당신을 용감히 헤엄치게 하리라.

바다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다시 솟구쳐 나와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소리 질러라, 웃으며 당신의 머리칼을 흔들어라. - <나 자신의 노래> 46에서

 

 

행과 연, 반복되는 운과 리듬과 같은 전통적인 시의 형식을 과감히 벗어 버린 이 책의 시는 스스로를 ‘월트 휘트먼, 미국인, 불량자들 중 하나, 하나의 우주’라 일컬었던 휘트먼 자신과 닮아 있기도 하다. 성적, 인종적 범주를 초월해 모든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휘트먼식 사유’는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개방적이다 못해 외설적인 것이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의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전형에 대한 그의 도전, 그 과정에서 탄생한 예언자적인 어조는 성경과 단테,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영미권에서 휘트먼의 시가 새롭고 자유로운 사유의 표본, ‘희망찬 초록 뭉치’로 사랑받아 온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지데일리/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