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을 맞이했다는 말은 우리 체험을 반도 표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연일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일은, 그들이 자연 세계에 대해 배우고 활기와 열정에 차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이 놀라운 시설을 확장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은, 국제자연보호연맹의 멸종위기종 목록에 오른 동물들을 데려와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흔히 얻을 수 없는 특권이다.”


재정난으로 사멸 위기에 처한 동물원을 운영 경험이 전혀 없는 한 개인이 사들인다면?


지난 2005년 어느 날 칼럼니스트인 벤저민 미에게 ‘꿈의 시나리오’가 배달된다. 바로 영국 사우스햄스의 푸르른 삼림지와 아름다운 해안으로 둘러싸인, 3만 평의 동물원 딸린 시골 저택, 다트무어 야생공원 매각 광고. 벤은 이것이야말로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진정한 꿈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동물원을 샀어요, 벤저민 미, 오정아, 노블마인

 

애초부터 승산이 없는 게임처럼 보였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했다. 잘 풀리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할 절호의 기회였다.


‘동물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한 평범한 가족은 결국 다 쓰러져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3대에 걸친 가족이 총출동, 인생과 열정과 전 재산을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3만여 평의 동물원을 평범한 개인이 사들인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흥미로운 <동물원을 샀어요>는 재정난으로 사멸 위기에 처한 동물원을 한 개인이 매입해 우여곡절 끝에 재개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유쾌하면서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 평범한 가족이 꿈과 열정으로 이뤄낸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영국 BBC TV에 ‘벤의 동물원’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송돼 전 세계에 알려졌고, 헐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자, 우여곡절 끝에 동물원 인수에 성공한 주인공 벤. 그는 재개장 목표를 6개월 뒤로 잡은 뒤, 동물과 동물원 운영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동물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흥미진진한 동물원 뒷이야기, 내부인이 아니고서는 체험하기 힘든 놀라운 광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동물원을 넘겨받자마자 ‘사건사고’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난다. 신고식처럼 치른 재규어 탈출사건을 시작으로 늑대 탈출사건, 영화 ‘쥐라기 공원’을 상기시키는 가슴 철렁한 재규어와 호랑이 운반 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져 동물원 운영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었던 사건들과 늑대, 호랑이, 재규어, 갈색곰의 정관수술, 암수술, 배설물 검사, 마이크로칩 이식수술, 예방접종, 치과 치료 장면들을 경이에 가득 찬 초보 동물원장의 시선으로 함께 체험하게 된다.


천둥 같은 포효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아프리카 사자 솔로몬에서 노쇠함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자애로운 알파 늑대 잭, 사람 목숨 하나쯤은 우습게 앗아갈 수 있으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물러터진 브라질산 맥 로니. 오랜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겨버린 재규어 소버린…, 벤은 동물들의 깊은 면에 대해서도 서서히 알아간다.


□ 동물원 안을 거닐고 있자면 활기와 스릴이 느껴진다. 거대한 나무들은 공기 좋은 곳에서만 자라나는 무성한 이끼와 오래된 지의류로 뒤덮여있고,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가 콧속과 폐를 가득 채웠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도시 생활과 스트레스에 대한 해독제 같았다. 그렇다 이곳은 실로 호모사피엔스 종을 위한 환경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이 속한 환경이었다. 탁 트인 공간, 나무들, 매혹적인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작은 연못들. 놀라운 우연이지만 동물원 내 거의 모든 구역의 나무, 관목, 풀의 비율이 우리 조상들이 살던 아프리카 초원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 여기저기 흩어진 관목, 끝없이 펼쳐진 잔디, 드문드문 보이는 호수들. 그 한가운데 서면 뇌의 특정 부분이 작동하면서 저 멀리 사슴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나무 사이로 검치 호랑이가 보이지 않나 살피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주의력이 높아질밖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운 점은, 거기서 호랑이와 사자와 늑대가 정말로 우릴 엿본다는 것이다.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지만 이 일은 내게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일은 나의 소명이다.” 벤은 1년간 열심히 동물원 시설들의 개보수와 동물들의 치료를 마친 후 마침내 동물원 면허 교부를 받고, 재개장에 성공한다. 그는 일 년 남짓한 기간 안에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글을 쓰며 도시 생활을 하던 때는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것들에 이제는 관심조차 가지 않는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을, 그리고 한 가족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은 행운의 ‘사건’을 감동 있게 전하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