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고,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다. 전체 곡물로 따져도 밀, 쌀, 옥수수 다음인 네 번째로 생산량이 많다. 그러나 바나나에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신기한 사실들이 너무도 많다.


<바나나>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이마고 펴냄.


<바나나>는 바나나의 특별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 댄 쾨펠은 지난 2003년 바나나에 퍼진 치명적인 질병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바나나를 구하자’는 일념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3년 동안 온두라스를 비롯해 에콰도르, 중국, 벨기에 등 전 세계 바나나 농장과 바나나 연구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도 미처 몰랐던 바나나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를 알게 됐다.

 

책엔 바나나의 기원과 신화, 역사와 지리,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과학이 얽혀 있다.


책에 따르면, 우선 바나나는 우리의 짐작과 달리 나무가 아니다. 커다란 풀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전부 한 종류다. 필리핀과 같은 바나나 산지에 직접 가서 야생 품종을 사먹지 않는 이상,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상업용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한 가지 품종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유는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는 것. 즉, 번식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 많은 바나나를 만들까? 장미 꺾꽂이처럼 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하면 바나나가 열린다. 때문에 전 세계인이 먹는 바나나는 모두 복제 바나나이며, 유전적으로 전부 쌍둥이인 셈이다.

 

사실 우리가 먹는 바나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흔히 날로 먹는 노란 바나나와 탄수화물이 많아 익혀 먹어야 하는 녹색 바나나인 플랜테인(plantain)이 그것이다. 플랜테인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리 재료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플랜테인은 수백만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주식이다.


일주일만 지나도 흐물흐물해지는 열대과일을 오늘날 이처럼 싼값에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바나나 회사들 덕분이다. 바나나를 최초로 상품화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의 기업들이었다. 지금도 업계 선두를 다투는 ‘치키타(Chiquita)’와 ‘돌(Dole)’의 전신인 ‘유나이티드 프루트(이하 UFC)’와 ‘스탠더드 프루트’가 그 주인공이다.


산지와 소비시장이 비교적 가까운 다른 과일과 달리, 바나나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났으며, 운송이 조금만 늦으면 썩기 일쑤였다. 바나나 회사들은 중남미의 울창한 밀림에서 한시라도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바나나를 싣고 와야 했으며, 지방 소매시장에 이르는 기나긴 유통과정 동안 바나나의 숙성을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으며, 철도로 놓고 항구도시들을 건설했다. 그리고 항구에 들어오는 화물선과 농장의 교신이 가능하게끔 전신과 전화, 라디오 통신망을 깔았다. 


바나나 화물선은 최초로 냉장 설비를 갖춘 선박이었으며, 바나나 회사들은 처음으로 숙성 지연을 위해 CA저장법(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중을 조절해 과실의 신선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보관법)을 이용했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 냉장보관 창고를 지었으며, 농장에서 시장에 이르는 바나나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 체계도 도입했다.


또한 오늘날 대중화된 콘플레이크에 바나나를 잘라 넣는 요리법을 만들었으며, 콘플레이크 포장박스에 최초로 쿠폰을 넣기도 했다. 바나나 회사들은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이 모든 혁신적 발명을 이루어냈으며, 사실상 ‘과일산업’ 자체를 만들어냈다.


탐욕이 불러일으킨 재앙


어떻게 보면 바나나 회사들은 세계화의 선구자였다. 그들은 생산과 유통에서 진실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그들은 상업적 농업 역사상 최초로 단일재배를 실시했는데 한 가지 품종만을 재배했기에 엄청난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과보다 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소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지와 노동력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중남미의 부패한 독재권력과 유착해 농지와 과세, 노동 환경에서 온갖 특혜를 누렸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베어버리고 독성 농약을 무차별 살포함으로써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1999년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바나나 포장시설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백혈병 발병율과 선천성 기형아 출산율이 국가 평균보다 두 배나 높았다. 2002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코스타리카의 남자 바나나 노동자 중 20퍼센트가 불임이었다고 한다.


당시 노동자들은 절대빈곤 상태에서 거의 노예와 다름없이 살았다. 그렇지만 회사 간부들은 골프장과 볼링장, 교회, 레스토랑 그리고 독신 간부들을 위한 창녀촌까지 들어선 농장에서 갖은 호사를 누렸다. 이 소식민지에는 교회에서 세탁소까지 바나나 회사가 운영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임금도 현금이 아니라 회사가 운영하는 상점에서만 교환할 수 있는 종이 쪼가리로 주었다. 원주민들은 이런 바나나 회사들을 가리켜 ‘엘 풀포(문어)’라고 불렀다.


만일 노동자들이나 라틴아메리카 정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거들고 나섰다. 20세기 내내 미국은 자신의 앞마당을 지키기 위해 중남미에 수시로 군사개입을 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바나나 기업들의 이익이었으며, 그 가장 큰 결과는 바나나 안보의 확보였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후 쿠바에 처음 상륙한 미국 기업이 UFC였다. 1912년 미국은 온두라스를 침공했고, 그 결과 UFC는 온두라스 내 철도 건설권과 바나나 경작권을 손에 넣었다. 1918년 한 해 동안 미군은 파나마, 콜롬비아, 과테말라에서 바나나 노동자 파업을 진압했다. 


이러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61년 쿠바 반대 세력이 카스트로를 몰아내기 위해 저지른 유명한 ‘피그스 만 침공사건’에서 CIA에 선박을 제공한 것도 UFC였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바나나 회사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지은이는 “우리가 바나나 재배국가와 의존국가가 겪고 있는 고통을 계속 외면한다면, 그들과 짐을 나누어 짊어지기를 거부한다면, 맨 처음 범선에 그로 미셸을 실어오면서 시작된 경시와 착취의 한 세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바나나 생산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가에서 나아가 얼마나 많은 환경이 파괴되는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특히 소비자로서 우리가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는 유기농 바나나를 선택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되돌려줄 수 있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고집한다면, 안전하고 모든 병에 끄떡없으며 농약 없이도 키울 수 있는 바나나를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다면 세상을 보다 좋게 바꾸는 올바른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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