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이성은 결론을 낳고 감성은 행동을 낳는다.” - 신경학자 도널드 칼네.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한 기술이 있다. 우리는 이 기술을 ‘정적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 부른다. 


적정기술은 어떤 지역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제3세계의 빈곤문제와 지역사회개발에 필요한 기술이고,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의 폭주에 숨 막혀 하는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는 기술이다. 힘이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인간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기술로 통한다.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이경선 지음, 뜨인돌 펴냄.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에 의해 주창된 적정기술은 지난 1970년대 들어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힘으로 무장한 거대한 기술에 눌려 곧바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사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지구자원의 고갈, 생태 환경의 파괴, 반복적인 오일쇼크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글로벌한 경제가 가지는 단점을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그리고 위기가 떠오를 때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해결책으로 ‘적정기술’을 제시한다.


현대사회의 화두는 단연 ‘지속가능성’으로 모아진다. 인류의 생존에 대해 지구의 환경이 지속가능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지구환경은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 해결의 중심에는 적정기술이 있다. 


과거 빈곤국이었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도와준 동력을 꼽을 때에도 적정기술이 회자된다. 우리는 이제 경제자립을 원하는 제3세계 나라를 돕는 통로로 적정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정기술이 진정으로 ‘적정한 기술’이 되려면 기술의 보급과 현지인의 교육, 지역민의 자립정신과 자신의 가진 것으로 기꺼이 나누려는 ‘나눔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또 ‘적정기술’이라고 해서 ‘구닥다리 기술의 개발도상국 전수’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제 적정기술은 화려하게 진보한 기술이 해결하지 못했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굵직굵직한 국제사회 문제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학 교수가 언급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의미하며, ‘아래쪽을 향한 위대한 도약(Great Leap Downward)’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술'에 끌리다


그날 마을에서는 성대한 장치가 열렸다. 닭을 잡고, 과일을 준비하고, 주민들은 너나없이 즐겁게 춤을 추었다. 한 교수는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빗물은 무료이고, 가장 깨끗한 물입니다. 마음껏 쓰세요. 빗물탱크를 만드는 동안 당신들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리고 빗물탱크를 설치하는 방법도 함께 배웠지요. 빗물을 사용할 때마다 돈을 내고 그 돈을 모으면, 나중엔 스스로 빗물탱크를 설치할 수 있어요.” … 축제가 끝날 무렵, 한 교수는 주민들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행복하세요? 아저씨 행복하세요? 아가야 행복하니?” 그들은 모두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빗물 덕분에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며 한 교수는 “나도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게 한무영 교수가 추구하는, 빗물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비雨 해피’이다.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은 이러한 적정기술을 통한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무심코 벌이는 작은 일이 지구촌이 직면한 문제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어떤 배역(역할)을 가지고 참여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전해준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적정기술의 시조는 비폭력운동의 창시자인 간디다. 그는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값싼 직물이 인도에 들어오면서 인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자, 1920년대 들어 직접 물레를 돌려 직물을 몸소 생산했다. 


인도 고유의 전통적인 직물방식은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누구든지 원하는 만큼 쉽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외부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간디는 마냥 좋은 제품들, 최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제품이나 디자인, 서비스라 해도 장기적으로 또한 결과적으로 그것을 누리는 개개인에게 ‘소외감’과 ‘의존성’ 그리고 ‘생존의 역량’을 박탈할 수 있음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간디의 사상은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쓴 영국의 대안경제학자 슈마허를 통해 확대, 발전했다. 


이에 앞선 196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개발을 위한 과학기술회의’에서 슈마허는 “대량생산 기술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재생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대중에 의한 생산기술을 제안했다. 그는 이 기술이 저개발국의 토착기술보다는 휠씬 우수하지만 부자들의 거대기술에 비해서는 값싸고 소박하다고 했고, 이를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디자인, 제품’에 대한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적정기술’이나 대중적으로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Other 90%)’이라 불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창의적인 사회적 기업가, NGO 활동가, 국제개발협력 종사자, 디자이너, 과학기술 종사자들의 뜨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적정기술의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하다. 사막 지역 주민들의 물 긷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개발된 ‘큐드럼 Q-drum’이 단순하면서도 적정성을 극대화한 이 분야의 아이콘이라면, 오염된 물을 즉석에서 정수해 마실 수 있는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는 현장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 제품으로 꼽힌다. 


모터 대신 두 발로 밟아서 작동시키는 간이펌프 ‘머니메이커(moneymaker)’는 이름 그대로 아프리카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현지 사회적기업을 통해 수십만 개의 판매고를 올림으로써 적정기술 분야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이는 소외된 계층을 위한 기술이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표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폴 폴락(국제개박기업 설립자이자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저자)의 주장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다.

 

사탕수수 같은 현지 자원들을 활용한 숯 제조기(MIT 개발), 열효율을 늘려 몽골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크게 개선한 축열기 ‘지 세이버(G-saver, 굿네이버스가 개발·보급한 대한민국 1호 적정기술 제품) 등은 슈마허가 말한 ‘중간기술’에 부합하는 제품이다. 


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히말라야 고산지역 주민들을 위한 태양광 발전기나 가난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태양열 보청기처럼 하이테크가 적용된 첨단제품들도 있다.

 

종류와 수준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결국 ‘지속가능성’으로 모아진다. 적정기술자들은 치밀한 사전조사를 거쳐 현지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개발·보급하고, 낯선 소재들 대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고장 나면 쓰레기로 전락하는 ‘일회용품’이 되지 않도록 유지·보수 방법을 가르쳐 주고, 현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설립을 지원함으로써 ‘자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되지 않으면 그 어떤 기술도 적정기술로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책의 부제가 ‘적정기술과 지속가능한 세상’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기술중심이 아닌 '인간중심'


만약 적정기술을 꼭 현지에서 나는 재료만 사용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제가 만난 누군가는 그렇다고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원산지가 그곳이 아이더라도 현지 재료들보다 싸고 편리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적정기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적정기술이 꼭 개발도상국에만 필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그렇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국내의 소외계층에도 필요하며, 지속가능한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에도 필요하다”고 예기할 것입니다. 적정기술은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그렇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이처럼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이 갖고 있는 적정기술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책 속에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 저자 이경선.

 

식수난을 겪는 남태평양 섬에 빗물탱크를 설치해 준 대학교수, 아프리카 사막에서 우물을 파는 NGO, 캄보디아 빈곤지역에 태양광 시설을 보급하고 기술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히말라야 오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준 대학생봉사단,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태양열 충전기를 개발해 보급한 대기업 사원 동아리, 수은에 노출된 인도네시아 금광지역 주민들을 위해 수은증기 회수기를 개발한 엔지니어, MIT 적정기술 공모전에 뽑혀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정수 시스템을 개발한 한국인 유학생들….


책 속엔 ▲물 ▲에너지 ▲주거 ▲산업 ▲지역개발 ▲교육 등을 중심으로, 분야별 20여 개의 생생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분야와 개발 주체와 기술 수준이 모두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 ‘36.5℃의 따뜻한 기술’인 적정기술을 통해 휴머니즘을 실천하고 빈곤을 해결하며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각 사례에 등장하는 학자, 기업, NGO 대다수가 “현지인들의 기술적 자립 및 현지 사회적기업 설립”을 활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활동이 기존의 ‘원조’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이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으로 적정기술의 의미와 가치는 이제 학계를 넘어 기업과 기관, 나아가 대중 속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적정기술은 ‘진보하는 기술’에 앞선 ‘존중하는 기술’로 귀결됨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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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저자
이경선 지음
출판사
뜨인돌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다양한 스펙트럼과 하나의 가치(사)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SE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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