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즐거우면 계속할 수 있다. 보는 것도 플레이하는 것도 즐거운 축구. 요한 크루이프가 지향한 축구다. 크루이프가 제시한 축구의 즐거움에 매료된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이 20년 동안, 아니 그 이상 쌓아 올린 결실이 지금의 바르샤라고 할 수 있다. 축구를 좀 더 좋아하게 되고 더욱 축구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수도 코치도 팬도, 사장도 스태프도 언론도 바르셀로나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다. 중요한 것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 축구를 즐기는 것이다.


사진출처 : 크루이프재단(World of Johan Cruyff)


"각각의 자리에는 

각각 다른 자질이 필요하다"


1988년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취임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역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펩 과르디올라 전 감독은 크루이프를 화가 라파엘로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체상을 그린 사람은 크루이프다. 라파엘로의 작품이 수많은 제자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듯이 우리는 크루이프의 작품을 계승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매력과 강점은 그 계속성에 있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크루이프가 그린 축구의 디자인과 철학 자체가 훌륭했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감독으로 불리는 크루이프는 1947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아약스 홈구장을 드나들며 유년기를 보냈다. 열 살에 아약스 유소년팀에 입단한 후 1964년 1군팀에 데뷔, 1973년까지 아약스에서 활동하며 8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세계 최고 이적료를 받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고, 리그 하위권을 헤매던 바르셀로나를 단숨에 우승팀으로 끌어올렸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돌아다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조직력과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자국의 축구를 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었다. 1974년 독일 월드컵 스웨덴전에서는 일명 ‘크루이프 턴’으로 불리는 기술을 선보이며 전 세계 팬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이른 은퇴와 미국 활동, 아약스 복귀를 거쳐 페예노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1985년부터는 감독 생활을 시작하며 또 한 번의 우승 신화를 써내려갔다. 1999년 20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에 선정됐으며,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에서는 펠레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크루이프는 수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았던 자신의 경기력을 무덤덤하게 인정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경기들을 회고한다. 아울러 바르셀로나로 이적 당시의 비화나 감독 시절 클럽 경영진들과 벌인 설전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사진출처 : 크루이프재단(World of Johan Cruyff)


"나에게 대학 학위 같은 건 없다. 

난 모든 것을 실전에서 배웠다"


크루이프가 여전히 최고로 불리는 것은 그가 들어 올린 우승컵이 많아서가 아니다. 바로 현대 축구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그의 경기 스타일 때문이다. 


아약스 선수 시절 토털사커의 창시자 리뉘스 미헐스 감독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이후 경기장 안팎에서 토탈사커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는 그의 선수 발탁 기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있던 시절에는 축구선수라면 응당 우월한 체격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 다소 왜소한 선수에게는 선발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축구는 머리로 한다. 다리는 
뛸 뿐이다"


크루이프의 생각은 달랐다. 체격으로 선수의 능력을 재단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기술로 공을 다루고 전략적 경기 운영이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선발로 기용할 수 있다는 크루이프의 원칙 덕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펩 과르디올라는 선발로 뛸 수 있었다.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의 이런 선수 선발 기준과 축구 철학을 계승해 현재 유럽 축계를 평정하고 있다. 


크루이프는 <마이 턴 My Turn> 곳곳에서 토털사커란 무엇인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술한다. 무엇보다 팬을 즐겁게 하는 축구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클럽 경영진이 흥행과 돈을 이유로 경기에 관여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른 사람은 일을 했지만 나는 축구를 했다"


크루이프는 평생을 축구를 위해 살았다. 바르셀로나 선수 시절에는 장애인 아동 축구 수업에 참여해 축구를 통한 사회 공헌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경기장을 떠난 뒤에도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조직 개편에 관여하며 선수 출신들이 경영 일선에서 축구 기술에 대해 자문하고 선수단 구성에 적절한 힘을 보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썼다. 


<마이 턴 My Turn> 요한 크루이프 지음, 이성모 옮김, 마티 펴냄

특히 지지부진했던 아약스 개혁에 끝까지 매달리며 자신을 키워준 아약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말년에는 크루이프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어린이들의 체육 활동을 장려하고, 체육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경기장을 지배했던 크루이프였지만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8년에는 집에 괴한이 침입해 가족을 잃을 뻔했고 그 때문에 월드컵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때 이른 은퇴 이후 돼지 농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이 사업 실패를 두고 크루이프는 ‘끔찍할 정도로 멍청한 짓’이었다고 자조하면서도 축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어야 했던 운명 같은 사건이었다고 술회한다. 


크루이프는 결코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떠벌리지 않는다. 그저 모든 승리와 성취에, 또 실패와 좌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뿐이다. 오만하지 않고, 그렇다고 과도하게 겸손 떨지 않는 그의 투박하고 정직한 말투는 그의 철학을 가감없이 전해준다.


지데일리 정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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