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아이는 노파를 향해 뛰어가더니 이내 입술을 디밀었다. 노파는 곧바로 눈을 감았으나 사내아이를 아주 밀쳐내진 않았다. 잠시 후, 기억이 돌아온 듯 노파는 사내아이에게 아픈 병 옮아가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사내아이가 제 아비의 부탁이나 독려 없이도 노파의 볼에 입을 맞추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을 무렵, 노파는 치매 3등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노파가 요양원으로 옮겨가기 전, 사내아이는 주말마다 제 아비와 함께 시골 들판에 붙어 있던 노파의 집을 찾아가 혼자 뛰어놀곤 했었다. 아이의 아비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두고 곧잘 잊고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맙게도 사내아이는 할머니와의 입맞춤만은 아직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박후기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문학세계사)
<함께 가는 세상을 봅니다!>
[책]으로 [만]나는 [세]상 ⓒ2010-2013 지데일리
자료도움 gdaily4u@gmail.com
트위터 @gdaily4u
'한장의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상의 나래 (0) 2014.02.21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 (0) 2014.01.23 도시를 그리는 사람들 (0) 2013.11.18 보물처럼, 금처럼 (0) 2013.11.04 어린아이처럼, 그 놀라움처럼 (0) 2013.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