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경제학, 생물학 등 학문들은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규칙과 비밀을 탐지해내려 한다. 그러나 과연 이는 가능할까? 복잡한 세상을 정량화하고 보편 법칙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학의 미덕이지만, 인간이 우주에 발자국을 찍는 현대 과학의 시대에도 전인미답의 영역은 있다. 바로 인간의 행동이다.

 

사진_버스트ㅣA. L. 바라바시 지음ㅣ 강병남, 김명남 옮김ㅣ동아시아 펴냄20세기 유명한 철학자 카를 포퍼는 1959년 ‘예측과 예언’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 바로 예측의 꿈이다. 눈앞의 미래를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꿈, 그렇게 알아낸 지식에 맞게 정책을 조정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다. 우리는 일식을 아주 정확히, 그것도 아주 한참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혁명을 예측하는 것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포퍼는 바로 답을 내려버렸다. 사회과학이 역사적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역사주의자의 교리일 뿐이며, 인간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공연히 고민할 것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사회과학의 협의된 의제인 것처럼 인정됐다.


우리에겐 하루가 다르게 보안카메라와 휴대전화, GPS나 기타 휴대용 기기들이 폭발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데 쓸 새로운 도구가 넘쳐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위치 정보와 소비 패턴 같은 정보들이 어딘가에 쌓인다. 기업들은 그 데이터를 이용해 생산성을 북돋우고, 선적에서 배송까지 매사를 추적한다. 정부는 데이터를 이용해 테러범을 잡는다. 무수한 기업들이 그런 데이터에 기반해 사람들의 위치와 행동을 예측하려 하고, 이로써 차세대 ‘구글’로 도약하기를 꿈꾼다.


우리는 데이터가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는 곧 새로운 과학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퍼와는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앤디 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쯤 세계적 명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등을 통해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웹에 게시된 뉴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바라바시가 예측한 결과, 사용자들의 클릭 패턴이 무작위적이라고 가정할 경우 평균 36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웹문서들의 수명이 더 길었다. 약 36시간이었다. 왜일까? 평균적인 사용자가 하루에 사이트에서 실시하는 스무 번가량의 클릭은 하루 중에 균일한 간격으로 퍼진 게 아니라, 몇몇 폭발적 기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폭발성 패턴에 따라 계산할 경우 정확히 실제와 같은 36시간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단순히 무작위적이라고 알고 있던 인간의 행동 속에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법칙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은 인간의 미래 행동까지 예측한다는 네트워크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지은이 A. L. 바라바시는 자신의 가계의 유래를 모티브로 삼아 픽션과 역사와 과학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16세기 헝가리 십자군 이야기를 배경으로 역사의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십자군 대장 죄르지 세케이와, 예언과 예측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귀족 이슈트반 텔레그디를 둘러싼 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역학 연구'라는 분야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살펴본다.


특히 이 책엔 물리학과 천문학, 컴퓨터과학과 생물학까지 인간의 행동 패턴 속에 숨겨져 있는 심오한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바라바시의 지적 탐구 여정이 펼쳐진다. 지은이는 16세기 십자군을 이끌었던 비운의 헝가리 대장 죄르지 세케이의 인생행로와 인간역학의 발전 과정을 교묘히 맞물리면서 종횡무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현재에서 과거, 과거에서 현재, 다시 미래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역사의 무작위성과 인간 행동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자유롭게 변주해 나간다.


지은이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흥미진진하게 하나의 결말로 수렴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쇠락해 가는 십자군 원정대의 최후를 숨 가쁘게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