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착한 글래머’와 ‘꿀벅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특히 10대 걸그룹의 멤버에게 붙여진 별명인 ‘꿀벅지’라는 말이 큰 논란이 됐는데, 천안에 거주하는 한 여고생이 이 표현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며 여성가족부에 이 단어를 금지시켜 달라는 청원을 올리면서 인터넷상에서 격렬한 논쟁이 붙기도 했다.


사진_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ㅣ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기획ㅣ변혜정 엮음ㅣ동녘 펴냄.jpg ‘착한 글래머’ 역시 인기 있는 시트콤에 나오는 여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두 단어가 문제가 된 것은 그 대상이 바로 10대이거나 20대를 갓 넘긴 여성이었다는 점에 있다. 언론에선 이 단어를 그대로 옮겨 마치 새로운 신조어라도 되는 것처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썼고, 문제가 제기된 지금도 그 단어들은 그대로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다.


이와 함께 청소년에게 담배나 술을 파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하면서도 걸그룹의 멤버를 술 광고의 모델로 내세우고, 10대 성매매를 엄벌하면서도 그들 신체의 일부를 ‘꿀’을 바른 허벅지로 묘사하고 노출을 강요하며 10대 여성을 성적인 대상이자 성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은 10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여성 연예인 중 60%가 특정 부위의 노출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고, 다이어트와 성형수술까지 권유받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근로권과 학습권까지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는 이런 이중적인 사회에 둘러싸인 10대 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10대의 성상품화, 외모 지상주의, 디지털 모바일 환경, 10대 성매매, 10대 동성애와 같은 주제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2010년, 대한민국은 로리콤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지금의 로리콤 문화가 21세기와 함께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2004년 <어린신부>의 박스오피스 히트와 문근영이라는 ‘국민 여동생’의 출현,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재현된 원조교제를 둘러싼 논쟁을 기점으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10대 여성이 성적 존재로 재현되고 주목을 끌던 것은 곧 그들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작품으로 이어진다. 2005년의 <제니, 주노>를 시작으로 <소문난 칠공주>, <리틀맘 스캔들> 시리즈, <과속스캔들> 등 10대 여성이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을 따라가거나 어린 싱글맘을 주인공으로하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줄줄이 등장한 것이다. 더불어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데뷔와 성공에 이어, ‘ 카라’ ‘2NE1’ ‘에프터 스쿨’ ‘티아라’ ‘포미닛’, 그리고 2009년 ‘F(x)’로 이어지는 걸그룹 전성시대 역시 한국 대중문화의 로리콤 신드롬 자장 안에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걸그룹의 등장과 그들이 소비되는 방식은 로리콤 문화의 중핵이 되었다. 2009년 말에는 ‘착한 글래머’ 3기에 고등학생이 선정되고 이 소식이 이틀에 걸쳐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등장하면서 이제 ‘여고생’은 명실 공히 ‘글래머’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고 즐기는 10대와 그것을 금기시하는 어른의 팽팽한 줄다리기, 이 둘을 이어주는 창구는 바로 ‘섹슈얼리티’다. 섹슈얼리티란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 ‘나는 누구인가’ 등 내가 속한 범주나 정체성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특히 욕망의 구조와 표현을 구성하는 일련의 매트릭스다.


섹슈얼리티는 개인만의 욕망이나 실천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맥락에서 유통되고 해석된다.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고민한다는 것은 욕망과 그 실천을 유통하고 해석하는 매트릭스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유쾌한 섹슈얼리티 인권센터)는 10대와 소통하려면 이러한 매트릭스 안에서 10대의 성을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그들이 서 있는 위치에서 ‘문화’로 보라고 말한다. 10대가 자신들의 미래 찾기를 위해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찾기보다 스스로 무엇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낼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즐겁게 일하며 살 수 있을지 자신들의 욕망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10대의 섹슈얼리티도 ‘그들 알기’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10대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욕망에 가해지는 억압 기제들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이 억압 기제들에 대해서 10대와 함께 서로 터놓고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10대들은 어른들과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는다. 10대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부터 이야기한다. 다이어트를 비롯해 성형, 화장, 염색, 돈 벌기, 친구와 놀기, 여행, 야동 보기, 쇼핑, 술, 담배, 연애, 성관계 등 10대들이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어른들은 “해서는 안 돼”라거나 “기다려야 해”라고 말하기 일쑤다. 이 모두가 ‘너희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결국 10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갈수록 10대를 더 대하기 어려워한다. 10대와 관련한 폭력, 반항, 낮은 자존감, 게으름, 분노와 억압, 아웃사이더, 과잉행동장애, 편견, 의존, 우울, 왕따 등의 문제들은 어른에게 언제나 부담거리다.


예전에는 잔소리라도 했지만 이제 그러기도 무서워진 세상이다. 이처럼 10대는 어른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영원히 어른과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언제까지 이 줄다리기가 계속돼야 할까?


책은 10대들이 누구와 친밀하게 관계를 가질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10대들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가시화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학력, 외모, 돈 벌기 등의 맥락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어른들이 10대들을 안전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성을 누리는 성적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고,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길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