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조건]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흑인노예해방을 선언한 인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링컨은 어려서부터 노동을 했기 때문에 정규교육이라곤 1년도 채 받지 못했지만, 늘 책을 가까이하며 법학을 공부한 인물론 잘 알려져 있다. 사람을 좋아한 그는 특히 시골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는 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신 앞에 동등하고 모든 개인은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그는 약자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가난하고 특권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를 시기하고 해치려는 정적들의 오만한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도와줬다.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이러한 정신에 바탕을 둔 링컨의 리더십은 바로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는데, 공리를 바탕에 둔 민주적 질서와 상호호혜의 정신이 뿌리를 내린 근자에 들어서는 이 말이 결코 새롭게 들릴 리 없겠지만, 링컨의 시대만 해도 매우 혁신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지도 철학이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던 지역, 인종, 종교, 계급의 갈등이 조장하는 첨예한 분열과 대립에 맞서 싸워야 했던 것과 함께 권위와 독선이라는 봉건적 헤게모니의 전통을 일거에 부정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 같은 여러 역사적 난관을 ‘차분히’ 극복하고 미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된 링컨을 새롭게 조명한 <권력의 조건>은 당시 여러 당파를 반영하는 신문 기사를 비롯해 주요 정계 인사들 간 주고받은 편지, 여러 라이벌과 그 가족들의 세세한 일기와 회고록, 의미 있는 사학자의 글을 망라하는 방대한 인용 자료를 더해 완성된 대작이다.


지은이 도리스 컨스 굿윈은 링컨이라는 ‘솔직하고 복잡하고’ ‘빈틈없으나 정직하며’ ‘다정하지만 강철 같은 의지를 지녔던’ 지도자이자 시대적 영웅을 다차원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인 사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당대 여러 인물을 통해 링컨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 이상한 내각의 손색없는 우두머리


링컨의 반대파는 그가 이 첫 번째 리더십 시험에서 실패하리라 확신했다. 그의 라이벌들은 저마다 “얼토당토않은 사람이 선출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감 없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지지자들만 곁에 두려 했을 것이다. 가령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택했다. 하지만 링컨은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내각이 서로를 파멸시킬 수도 있지만, 반란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벌 싸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훗날 《시카고 트리뷴》의 조지프 메딜은 링컨에게 왜 정적과 적수로 구성된 내각을 택했느냐고 질문했다. 특히 공화당 공천 과정에서 가장 큰 라이벌이었고 여전히 이전 패배에 분노하고 있던 세 사람을 선발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링컨의 대답은 간단하고 솔직하며 날카로웠다. “내각에는 당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단결해야 합니다. 당을 잘 살펴본 나는 이들이 바로 그 유능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슈어드, 체이스, 베이츠…. 실로 그들은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드러난 사람은 스프링필드 출신의 대초원 변호사였다.


책은 당시 링컨이 직접 쓴 글과 다른 이들이 그에 대해 기록한 수백 개의 글로 이뤄졌다. 특히 지난 18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링컨의 라이벌인 뉴욕 주 상원의원 윌리엄 H. 슈어드, 오하이오 주시사 새먼 P. 체이스, 미주리 주의 저명한 노(老) 정치가 에드워드 베이츠의 이야기를 한데 엮고 있는데, 이들의 눈에 비친 링컨의 모습은 그야말로 냉소적이었다.


한번 당선된 하원에서 별 볼일 없이 임기를 마친데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두 번 연속 낙선한 시골 벽지의 변호사. 당대 사람들은 그가 공천받은 것은 우연이며, 노예제도에 대한 중도적 입장과 접전 지역이었던 일리노이 출신이라는 이점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해  5월18일 결전의 날 아침, 누구도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논쟁을 통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연설 실력만큼은 인정을 받았지만, 실상 그의 라이벌들에 비해 링컨은 당내의 입지가 약했고 정치 경력은 미천했으며 정치 자금도 없었다.


한 번의 하원의원 시절은 별 볼일 없이 마쳤고 상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 낙선한 것이 이력의 전부였던 링컨이 어떻게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쟁쟁한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일까.


링컨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들이 있다. 지은이는 링컨의 힘이 보수주의자로부터 극단적 급진주의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포용력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링컨은 다른 후보와 달리 적을 만들지 않았고 패배한 뒤에도 과거의 적과 우정을 맺을 만큼 관대했다.


그는 언어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사용해 중도주의적인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고, 이로써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은근슬쩍 말을 바꿨던 경쟁자들보다 유리해졌다. 또 서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민심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링컨은 선거전의 모든 사항에 관여해 진두지휘하면서 전략가로서도 뛰어난 정치 수완과 자질을 보였다.


링컨의 포용력은 이후의 내각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대개의 평범한 대통령들은 명백하게 자기의 뜻을 따르는 자기 사람을 주변에 심기 마련. 그러나 링컨은 그 반대로 행동했다. 링컨의 용인술은 파격적이었다. 한 자리를 놓고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바로 그 라이벌들을 자신의 핵심 동료, 즉 내각에 끌어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그가 엄청난 자신감과 관대함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슈어드는 국무장관, 체이스는 재무장관, 베이츠는 법무장관에 임명됐다. 링컨은 민주당 출신의 세 사람에게도 나머지 장관직을 제안했는데, 기디언 웰스는 해군장관, 몽고메리 블레어는 우정장관, 에드윈 M. 스텐턴은 전쟁장관이었다.


내각에 이들이 존재할 경우 링컨은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라이벌로만 구성된 이상한 내각의 손색없는 우두머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막강한 경쟁자들은 처음엔 링컨이 경험도 없고 무식하다고 멸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위태로운 조국을 이끌어 암울한 시대를 헤쳐 나가는 충실한 친구가 됐다.


이는 모든 파벌과 당파를 통합하고 끌어안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링컨은 대의를 위해 편 가름 없이 적임자를 뽑았고, 거인의 권위로 이질적인 내각을 지배했다. 서로 잘났다고 싸우며 엉뚱하게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구조였지만, 링컨은 그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결정권을 거머쥐었고, 그 적대적인 정적들에게서 최고의 역량을 끌어냈다.


링컨의 뛰어난 능력을 가장 먼저 알아챈 슈어드는 대통령을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만들려고 했던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슈어드는 장관이 된 지 몇 달 만에 링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언자가 됐다. 베이츠 역시 초기엔 링컨을 착하기는 해도 무능한 행정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대통령이 비길 데 없는 지도자이자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하게 됐다.


대통력직에 대한 오랜 야망을 버리지 못해 고뇌하던 체이스조차 결국 링컨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처음 만났을 때 링컨을 무시했던 스탠턴도 그를 존경하게 됐고, 대통령이 사망하자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 '이것'이 진정한 권력의 시작이다


슈어드와 베이츠처럼 에이브러햄 링컨도 일찍이 정치에 매료되었다. 일리노이 주 뉴세일럼에 온 지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스물세 살의 겁 없는 청년 링컨은 생가먼 카운티에서 주 의회 의원으로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신출내기가 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공직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1832년 3월, 국내 개선과 공교육, 고리대금 금지법을 촉구했던 휘그당 강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입후보를 선언했던 그의 연설에는 이러한 야망과 불안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야망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제 동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 외에 더 큰 야망은 없습니다. 제가 이 야망에 다다를 수 있을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링컨의 포용 정책은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대립했던 남부의 적대 세력에게까지 일관되게 적용됐다. 링컨은 남부가 노예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마음 속 깊이 이해했고, 노예제 확산을 반대하면서도 남부의 입장에 대해 일체 비난하지 않았다.


연방이 분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낮은 자세를 취해 남부를 회유하고 설득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부의 빠른 복원을 위하는 마음에서 남부의 지도자들을 용서했고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관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처럼 링컨의 자질을 라이벌들의 면모와 비교해보면, 그의 승리는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링컨의 비범한 정치적 능력, 고난과 좌절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다져진 용기는 그를 남보다 뛰어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던 것이다.


경쟁자였다가 동지가 된 이들의 수많은 글을 보면, 링컨의 정치적 능력이 어떻게 발현됐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의 일기와 대화, 가족,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와 추억은 링컨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링컨의 가장 뛰어난 면모는 무엇일까.


링컨은 암울했던 전쟁기간 동안 친절한 마음과 놀라운 화술, 재기 발랄한 유머로 동료와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불만과 다툼으로 내각이 붕괴될 위기를 맞았을 때, 그는 사사로운 비난에 반응하지 않았고 모욕을 당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링컨은 자신을 싫어했던 사람들과도 우정을 맺었고, 공로를 함께 나눴다. 그대로 두면 끝까지 가시지 않을 적개심을 없앴으며, 아랫사람의 잘못을 몸소 책임졌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자신감을 잃거나 대의를 잊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도, 연방을 구하겠다는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일개 인간이 역사적 사건을 좌우할 수 있느냐, 아니면 그들은 그저 시대의 산물일 뿐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거듭했다. 이러한 논쟁에서 에이브러햄 링컨만큼 당대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없다.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춰보면, 남북전쟁과 연방의 보존, 노예제도의 종식을 위해 필수조건이었다는 게 이 책의 평가다.


책은 벽지의 무명 변호사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유망한 세 라이벌을 어떻게 이겨냈고, 이후 그들과 어떻게 연합했는지를 통해 진정한 권력이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링컨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여러 사람의 인생을 다루면서, 링컨이 어떻게 사람을 다스렸고, 어떻게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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