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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은 불평등의 온상이었다
    사회 2013. 4. 30. 18:56

    [거대한 역설]


    <지데일리>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으로 대표되는 빈곤층 소액 대출 사업이 악덕 사채업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평균 경제 성장률 7, 8퍼센트에 이르는 고성장 국가 인도에서 왜 5살 미만 어린이의 절반이 영양실조에 시달릴까? 2008년 이후 중국, 인도, 한국, 일본과 중동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토지를 사들인

    이유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현상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발(Development)’이다. <거대한 역설>은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움직여 온 정치ㆍ경제적 흐름을 개발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환경과 에너지 위기, 슬럼 확산과 식량 위기 등 현재 세계가 처한 전방위적 위기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구상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필립 맥마이클은 이 책에서 개발과 불평등 확대의 내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헤친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개발의 의미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식민화와 산업화 시대부터 시작해 개발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근원적 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의문에 답을 찾는다.


    ▵ <거대한 역설>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 교양인 펴냄


    책은 스스로 근대적 발전의 표준 국가가 된 미국, 전후 ‘개발 프로젝트’의 총아로 부상한 한국, ‘양말 도시’와 ‘넥타이 도시’를 거느린 ‘세계의 공장’ 중국, 라틴아메리카의 자원 민족주의를 선도하는 베네수엘라까지, ‘개발’의 다양한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역사적으로 개발이 ‘통치를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 동원됐다는 데 주목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 지배 프로젝트’부터 20세기 중반에 등장했던 ‘개발 프로젝트’, 해체기에 들어선 ‘지구화 프로젝트’까지, 오랜 세월 전 지구가 따라야 하는 ‘보편적 발전’의 길로 여겨졌던 개발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 개발이 평등을 만들었다?


    사실 개발만큼 역설로 가득 찬 현상도 없을 것이다. 개발의 기원 자체가 지배와 종속에 바탕을 둔 권력 관계로부터 출발한 역설, 신생 국가의 존립 근거로 표방했던 국가 발전 담론이 억압적 국가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 역설,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 시대를 맞아 기존의 개발 모델을 폐기하고 탈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찾아야 하는 역설 등 어느 하나 역설 아닌 부분이 없을 정도이다. (…)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변화’를 이루자는 것인데, 세상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개발 분야 역시 ‘좋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진단이 모두 다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개발, 그저 선의를 품고 실천하기만 하면 달성되는 개발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어떤 성격의 개발인지를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에서 지금까지 개발은 나라와 인종과 이념을 초월해 전 지구 차원의 정치ㆍ경제적 화두였다. 개발은 ‘다함께 잘사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경제 성장을 의미했다. 그런데 과연 개발은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줬을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됐을까?


    책은 이러한 기대와 달리 전 세계에 걸쳐 개발이 오히려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을 불러왔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발은 인간에게 기회와 번영을 확대해주지만,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 빈곤 퇴치를 목표로 삼지만 오히려 빈곤을 심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결론이다.


    멕시코의 착취 공장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라틴아메리카ㆍ아프리카ㆍ아시아에서 소규모 경작지를 수출용 작물을 재배하는 상업형 농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이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면서 만들어진 ‘슬럼 행성(대규모 빈민촌)’ 등 개발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 확산의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경제 성장과 빈곤이 함께 나타나는 개발의 역설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세계 인구 중 상위 10퍼센트의 부유층이 전 세계 소득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과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성 영양 실조 상태에서 신음하게 만드는 먹을거리 위기 상황과 같은 사실로 명백히 입증된다. 인도의 예를 들어보자.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8퍼센트에 달하고 2013년이면 경제 성장률이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인데도 2010년 현재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영양 실조 상태이다.


    책은 지난 200년의 근현대 세계사를 개발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파악하면서, 개발의 내용과 초점에 따라 시기별로 ‘식민 지배 프로젝트-개발 프로젝트-지구화 프로젝트-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시대로 나눠 살핀다.


    우선 개발의 역사적 기원을 파헤치면서 개발이 자본주의, 산업혁명, 서구의 비서구권 지배와 긴밀하게 얽힌 채 시작된 과정이었음을 알려준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 시대에 식민 본국의 산업화와 식민지 주민 관리를 위한 일종의 통치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개발은 그 기원에서부터 종속과 지배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개발은 처음부터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의 문제였다.


    개발이 국가의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개발 프로젝트’의 시대(194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가 열린 것이다.


    식민 시대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면서 이른바 ‘개발 프로젝트’의 시대가 열렸다. 이들 나라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정당성을 시민권적 사회 계약에서 찾으면서, 국민을 잘 살게 만드는 경제 개발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자 했다.


    개발 프로젝트는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화 프로젝트(1980년대~2000년대)’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이는 개발이 종말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의 좌표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개발 프로젝트 시대건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건, 개발의 명분은 언제나 전 인류가 ‘모두 잘사는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그 명분과 목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만 이전에는 개발이 국가가 중심이 돼 진행하는 공적인 프로젝트였다면, 이제 개발은 민간(시장)이 추진하는 전 지구적 프로젝트로 새롭게 규정됐다. 20여 년간 지속된 지구화는 국가 정책과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문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 이제는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무자비하고 극도로 경쟁적이며 점점 더 부패하는 사회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 사회’를 건설하자는 새로운 욕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밤타레(Bamtaare)라는 개념은 공동체와 환경을 통합한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한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2008년 자국 헌법에 발전을 ‘잘사는 것(에스파냐어로 buen vivir, 또는 체쿠하어로 sumak kawsay)’이라고 재규정함으로써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원주민과 농민과 아프리카계 후손과 여성, 환경 운동가, 청소년이 수십 년간 펼쳐온 정치적 투쟁과 연대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며, 경제를 생태, 인간 존엄, 사회 정의 아래에 두는 개념이다.


    국가를 시장의 종으로, 시민을 상품 소비자로 전락시킨 지구화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수명이 다했다는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2000년대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심각한 금융 위기부터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이탈리아ㆍ인도네시아ㆍ멕시코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쓴 식량 폭동, 지구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류가 처한 파국적 상황을 폭넓게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개발’과 ‘성장’ 담론이 지속 불가능해진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그러나 책은 무시무시한 경고의 나열로 끝나지 않는다. 지은이는 금융 위기, 환경 위기, 식량 위기에 맞서 일어선 전 지구적 대항 운동과 기존의 개발 담론을 비판하는 대안 담론을 소개한다. 나아가 각 운동의 맹점과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탁상공론이 아닌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인도 히말라야 중앙 지대에서 펼쳐진 ‘칩코 운동’과 같은 풀뿌리 환경 저항 운동,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이 대표하는 식량 주권 운동,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가 대표하는 세계주의 운동, 탈성장(degrowth)이나 제로 성장(zero growth)과 같은 대안적 성장 이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은이는 지구화 프로젝트 이후의 개발 담론을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라 부른다.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는 국제기구에 의해 집행되는 잘 조정되고 일관된 정치적ㆍ경제적 현실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일종의 사회적 경향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를 다루면서 환경과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전통 방식의 농업, 풍력이나 재생 에너지 같은 대체 에너지원 개발로 대표되는 녹색 기술 등을 살펴본다. 생태 중심적 농업 혁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의 중요한 사례로 떠오른 쿠바의 경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또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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