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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고, 만든 '숨겨진 걸작'사회 2013. 5. 20. 10:57
[아까운 책 2013]
지난 2012년 출간된 숨은 걸작을 발굴하고 그 의미를 재조명하는 <아까운 책 2013>. 올해는 탐서가 뿐만 아니라 편집자도 참여해 책을 ‘읽는 이’와 ‘만든 이’ 양쪽의 추천작을 고루 실고 있다. 아깝게 묻힌 좋은 책들을 발굴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아까운 책’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이번 책에서는 김지수, 목수정, 엄기호, 정여울, 정승일, 하지현 등 각 분야의 이름난 탐서가 47인이 문학, 인문, 경제ㆍ경영, 문화ㆍ예술, 사회, 과학 등 총 6개 분야에서 추천작을 가려냈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도 권한다. 더불어 편집자 42인이 자기 출판사의 ‘아까운 책’을 꼽고, 그 속사정을 들려준다.
지난해 말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의 키워드는 ‘힐링’과 ‘멘토링’이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마음속 깊이 감춰뒀던 생의 아픔과 고민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치유 받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대가 당도한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 역시 시대의 요구에 답하며, 독자에게 위안을 주고, 삶의 새로운 길을 여는 책들을 선보인다.
<아까운 책 2013> 강양구 외 지음, 부키 펴냄
<보그>의 피처디렉터 김지수는 잭 런던의 <불을 지피다>를 소개하며, 우리를 구원할 야성의 문장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삶이 접속사로 이어지는 긴 문장이라면, 그 어떤 서술어가 쳐들어와도 스스로 주어의 자리에 가서 서겠다는 결기”를 잭 런던의 글 갈피에서 읽어 내고, 우리에게 일상이 고단할지라도 ‘혁명가’와 ‘모험가’로서 삶을 살아 내라고 독려한다.
도서 평론가 이권우는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를 통해 난세일수록 유교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으로 다시 유교를 들여다보며 “그 맑은 사상의 샘물을 건져 올려 이 시대의 사막을 건너갈 힘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한편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성공하고, 최신 유행의 전도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속에서 <행복의 경제학>을 권하며 희망을 전하는 이도 있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ㆍ운영위원은 “인간의 가치와 환경,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책을 더 많이 읽고, 텔레비전을 덜 보며, 시선을 세계로 돌리는 사람들과 함께 ‘대안적 경제체제’를 만들어 가자”고 주문한다.
스마트폰이 있기에 더 분주해진 세상이다. 출판 평론가 장동석은 어느덧 스마트폰 놀이가 삶의 일부가 돼 버린 자신을 발견을 발견하고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집어 든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네트워크에 둘러싸인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현대인이 찾아야 할 숨은 보화는 ‘고독’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 두고 산재한 지식의 껍질 사이에서 ‘진리의 낱알’을 찾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작년 대선 즈음,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던 시점에 등장한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자유기고가 노정태는 “껍데기뿐인 ‘경제민주화’ 논의는 접어 두고 우리가 사는 초현실적인 현실을 직시하자”고 일갈한다. 그는 ‘건희제’로 대표되는 재벌 가문의 위세가 등등한 판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진지하고도 집요하게 주식회사의 소유권을 고민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의대 지망생은 늘어 가는데, 좋은 의사는 줄어 가는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그 대안으로 <의학, 가슴으로 말하라>를 권하는 의사 예병일의 목소리와 헬라세포에서 현대 의학의 비윤리성을 읽어 내는 과학 전문 번역가 김명남의 나직하지만 묵직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해마다 4만여 종의 책이 출간되고, 그 중 100여 권의 책만 화제에 오르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각박한 상황에서 외면받은 3만9900여 권의 책을 만든 편집자의 심정은 어떨까.
<진리와 방법>을 만든 문학동네 고원효 인문팀 부장은 신화처럼 출간 소문만 전해지던, 그렇기에 많은 독자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던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의 역작을 12년 만에 출간하고서, 기대와는 달리 잠잠한 반응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를 편집한 동아시아의 박현경 주간은 “고요한 맑음, 은은한 투명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우리 차의 첫 느낌을 살리자”며 지은 제목이 너무 어렵고 불교적이라 판매 부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한다. <가족 사냥>을 출간한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와 <너무 다른 사람들>을 만든 알키의 박나미 편집자는 책의 분량이 방대해서 혹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아까운 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진단을 내린다.
반면 <언지록>을 내놓은 알렙 조영남 대표와 <개의 힘>의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처럼 리포지셔닝한 판본을 만들어, 혹은 할리우드의 영화화를 기회로 삼아 결코 ‘아까운 책’에 머물지 않겠다는 포부를 내비치는 이도 있다. 결국엔 ‘아까운 책’이 돼 버렸지만, 책에 들인 열정과 노력만큼은 ‘베스트셀러’ 못지않다는 편집자들의 열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손정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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