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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다발에서 다름을 발견하라사회 2013. 6. 3. 10:50
[리듬분석]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시위로 촉발된 ‘68운동’은 20세기 인류문화의 근본을 바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정치적 사건으로는 단지 한 달여 만에 모든 것이 끝나고, 구체적인 세계정치의 변모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 인류에게 의식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전의 삶의 양식이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문화혁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68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성 속의 광고, 소비, 자동차, 여성 등의 문제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대성을 예리하게 비판한 프랑스의 사회학자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중요한 맑스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던 그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사유할 필요성을 그의 여러 저서 속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다.
<리듬분석> 앙리 르페브르 지음, 정기헌 옮김, 갈무리 펴냄
그의 유작인 <리듬의 분석>은 시간과 공간, 도시, 미학과 관련해 진행했던 리듬에 대한 그의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 중 하나 역시 시간과 공간의 통합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생체적, 심리적, 사회적 리듬분석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 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
체험과 인식의 일치를 위해 평생 동안 노력했던 르페브르는 맑스, 바슐라르, 니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혼합해 ‘리듬분석’이라는 새로운 과학,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정초하려 했다.
리듬분석은 형이상학적 주제들과 미시적인 일상 모두에 관심을 기울인다. 음악과 사물, 상품, 자본주의적 시간의 조작, 신체의 조련, 미디어, 정치적 규율, 도시 등이 이 책에서 다뤄진 리듬분석의 대상이다. 시인을 닮은 리듬분석가의 역할과 잠재성에 대한 초상을 그리기도 하고, 아파트 베란다에 난 창을 통해 파리의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거리의 군중과 건축물에 대한 구체적인 리듬분석을 직접 행하기도 한다.
리듬분석은 데카르트적 전통의 서양 철학에서 ‘생각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특히 그동안 문제시됐던 ‘감각적인 것’을 우월한 지위에 재등극시킨다. 리듬분석은 부동인 것처럼 보이는 사물조차 각자의 리듬을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어둠이 내린 정원의 표면을 주의 깊게 청취하면 식물, 바람, 사물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리듬분석가의 역할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수많은 리듬의 다발 속에서 특정한 리듬을 포착하고 변형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리듬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힘을 운동 속에 투입한다는 점에서 리듬분석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예술가, 시인에 가깝다.
르페브르에게 리듬은 시간, 특히 반복에 대한 이해와 분리할 수 없는 무엇이다. 우리의 일상은 각종 반복들로 채워져 있다. 르페브르는 반복은 동일한 것의 무한복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상생활과 의례, 축제, 규칙, 법 등 모든 반복 속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틈입하는데, 그것이 바로 ‘차이’다.
이러한 점에서 리듬분석가의 과제는 리듬이라는 개념 속에 이미 내포된 차이와 반복의 창조적 관계를 포착하고 그것이 더 많은 새로움으로 나아가도록 변형시키는 것이다. 주되게는 두 종류의 반복의 상호간섭이 일상을 구성한다. 선형적 반복은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노동의 조직화에 종속된 반복, 예컨대 취침, 기상, 출근, 퇴근 등이다. 선형적 반복은 시계의 시간, 양화된 시간에 맞춰져 있다.
이보다 근본적인 것은 낮과 밤, 달과 계절과 같은 순환적 반복이다. 순환적 반복은 우리의 일상을 흐르는 우주적 리듬, 생명의 리듬, 생체적 리듬이다. 선형적 반복, 순환적 반복의 이중 척도가 현대의 일상생활에 시간을 부여하는 근거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의 사용을 둘러싼 격렬하면서도 비가시적인 자본주의의 전투가 벌어진다.
❐ "사유란 사용되는 순간 완성되는 것"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면서 빈 공간을 만들어 낸다. 자본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시적이고 미시적으로 주변의 것들을 죽인다. 자본은 건설하지 않고 생산한다. 자본은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된다. 자본은 삶을 가장한다.
르페브르가 평생 몰두했던 과제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것이었다. 시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니체와 마찬가지로 음악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자신 역시 상당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갖춘 음악가였고 베토벤과 슈만을 사랑했으며, 쇤베르크 등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에게도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음악의 일반이론이 존재하는가? 리듬은 연구되었는가?”라고 질문한 뒤, 음악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이해방식을 제안한다.
르페브르는 ‘멜로디-하모니-리듬’의 3항으로 음악을 이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중에서 리듬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멜로디, 하모니, 리듬 모두 시간과 관련이 있다. 멜로디는 ‘음들이 시간적 연쇄 속에 차례로 배열된 것’이고, 하모니는 ‘동시에 울리는 음들’이며, 리듬은 ‘음들의 위치와 상대적 길이’다. 음악은 계산과 측정으로 환원되는 수학적 모델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양화된 시간 개념을 거부하고 ‘측정 불가능한 것’, ‘체험된 것’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는 르페브르의 분석에 있어 핵심적이다.
“리듬분석은 ‘도시의 불가사의’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도시는 국가와 자본의 선형적 리듬이 결집된 장소이기 때문에 르페브르에게 도시는 일상적 혁명의 장소였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구획 짓고, 일상과 몸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무언가를 향해가기 위해서 리듬분석가는 도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르페브르는 파리의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건축물, 도로, 차량, 군중들의 리듬들을 읽었다. 리듬을 읽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의 표면(현재)을 넘어 존재의 심연(현전)으로 시선을 가져가는 것이다. 예컨대 파리의 광장에 대한 청취를 통해 초현대성과 전통에 대한 의고주의를 동시에 지배전략으로 취하는 국가권력의 리듬과 그 이면에 흐르는 자본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르페브르 사후 친구이자 동료였던 르네 루로에 의해 출판된 이 책은 왜 르페브르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맑스주의 철학자 중 한 명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르페브르의 사유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무수히 많은 질문과 분석을 자극하고 있다.
손정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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