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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노릇의 과학]
아이의 귀를 잡고 끌어올리는 서울 구경, 눈치 보며 일찍 퇴근한 날 사 가는 따끈한 통닭, 산타클로스를 가장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비밀 선물, 아이와 엄마의 정다운 한때를 사진에 담으면서 자신의 모습은 숨기는 존재. 아버지(아빠)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빠 노릇의 과학> 폴 레이번 지음ㅣ강대은 옮김ㅣ 현암사 펴냄
지금까지 남성은 육아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제돼왔다. 산업사회와 함께 진행된 핵가족화와 성별 분업 경향이 아버지를 경제 주체로, 어머니를 가사 및 육아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남성은 마치 선천적으로 육아와 거리가 먼 사람으로 여겨지게 됐다. 하지만 과학이 말하는 진실은 다르다. 실제 실험과 통계에 따르면 아이의 언어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빠다. 아이의 지능과 사회성은 아빠와 함께 지낼 때 자란다.
‘한 연구진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3~4세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유치원에서 친구들 간의 인기로 매긴 등수를 교사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신체적으로 가장 강도 높고 가장 즐거운 놀이를 한 아동이 제일 인기가 많았다. 아버지가 아이의 사교 능력에 관련 있다는 여러 증거를 보면, 아버지가 아이와 놀아주는 방식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 놀이의 중요성은 아버지와 아이 모두가 빠른 속도로 강도 높은 활동을 하는 동안 서로의 정서적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아이가 또래들과 어울리는 데 필요한 자질이다.’(169~170쪽)
미국의 한 연구팀은 아이의 언어 발달에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아동의 표현 언어 발달에 교육과 양육의 기여를 뛰어넘는 고유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는 소득 수준이나 학력과도 상관관계가 없었다.
물론 소득이 높고 학력이 좋으며 상호 교환적인 대화를 하는 아버지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일관되게 아빠가 엄마보다 더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어머니의 교육 수준과 대화 방식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남성에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질문에 <아빠노릇의 과학>은 아버지와 아이 관계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와 아이 사이를 상세히 설명한다.
아버지와 함께할 때 얻는 가장 큰 장기 소득은 사회성 발달이 꼽힌다. 한 연구진이 유치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이를 추적해보니 모두 아버지와 고강도 신체 놀이를 한 아이들이었다.
이처럼 아이들의 사회성과 사교성 발달은 아빠 특유의 ‘거친 몸싸움 놀이’가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아이를 보살피지만, 아빠는 아이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짓궂은 아빠의 괴롭힘(?)을 통해 불안정한 상황을 통제하는 힘과 위험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된다.
상대방의 욕구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방법도 배운다. 현대 사회가 원하는 리더십이 있는 아이, 어느 곳에서나 잘 적응하는 아이,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아이는 아빠가 육아에 참여할 때 비로소 커갈 수 있다.
이 책은 수정 이전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빠와 아이의 삶을 조명한다. 저자 폴 레이번은 아빠가 되기 위한 자질은 임신 이전부터 준비된다고 한다. 일례로 청소년기 남성의 식습관은, 자식은 물론 손주의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
스웨덴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초기 청소년기에 굶주린 조부의 손주들은 풍부하게 먹은 조부의 손주들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심장병이나 당뇨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적었다. 음식이 부족한 환경을 감지한 남성의 몸이 유전자의 신호를 변경해, 자손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 남도록 돕는 것이다.
아내 임신기는 남성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시기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기야말로 추후 아이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대한 때라 역설한다. 임신기 남성의 호르몬 수치는 아내의 호르몬 수치에 연동해 변화한다. 특히 아내와 사이좋은 남편일수록 호르몬 변화가 확실했고, 그런 남자가 추후 좋은 아버지, 즉 양육적 아버지가 될 확률이 높았다.
유아동기는 엄마가 아이의 정서와 미래를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인데, 이른바 ‘애착이론’이 발동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착이론에는 맹점이 있으니, 아이들은 주양육자(주로 엄마)를 따르지만, 아버지를 실험에 참가시킬 경우 아버지에게도 애착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아버지에게 더 애착하는 아이도 있다. 아버지가 육아에 참여하는 가정일수록 아이들은 더욱 강한 애착 반응을 보인다. 이렇듯 육아에는 남녀가 없다. 아이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똑같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등대인 것이다.
‘딸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십 대 여자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아버지의 부재와 이른 사춘기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왜 그런지에 관한 설명은 추론일 뿐이며 아버지의 행동이 딸아이에게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다. (……) 페로몬은 아버지의 존재 유무가 어떻게 딸에게 영향을 주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시험되지 않은 가설이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페로몬 작용이 있다는 증거는 불분명하지만, 일부 연구에서 남자 배우자와 함께 자는 여성이 더 규칙적인 월경 주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남성 페로몬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181~186쪽)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는 성적인 관심에 충동적 행동을 하기도 하고,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여 자제력 없이 날뛰기도 한다. 가령 아버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춘기 딸의 성조숙증이 예방되는가 하면 위험한 성적 행동과 십대 임신 확률도 감소한다.
이에 대해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호르몬의 영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공감 능력은 아버지와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압도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버지만이 선사할 수 있는 기여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이 아이의 정서적, 신체적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한다.
이는 ‘아버지만’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페미니즘, 동성결혼과 한부모 가족의 증가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는 참 중요한 존재라는 것처럼 아버지 역시 중요한 사람임을 강조할 뿐이다.
아버지는 아이가 세상에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스스로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행복하고 건강한 어른이 되도록 돕는다. 이 책은 ‘부성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다.
지데일리 손정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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