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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권력과 손잡은 또 하나의 권력사회 2017. 7. 19. 09:48
[SOCIETY in]
‘정경유착’ 또는 ‘자본과 권력의 동맹’은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새로울 것 없는 낱말들이다. 그러나 <삼성 독재>는 1987년 민주화를 기점으로 하는 삼성과 정권 동맹의 성격 변화를 살펴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삼성 독재> 이종보 지음ㅣ빨간소금 펴냄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며, 자본독재 시대에 민주주의의 과제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은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종업원 40명 규모의 ‘삼성상회’를 세운다. 삼성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80여 년 세월을 거치며 삼성은 세계적인 재벌그룹으로 도약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과 맺은 동맹 덕분이었다. 정권과 동맹을 통해 삼성은 또 하나의 권력이 됐고 독재와 민주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변함없이 권력을 휘두른 집단은 삼성이 거의 유일하다.
이병철 시대에 삼성권력은 독재정권과 동맹 관계를 만들며 탄생했다. 삼성은 원조 물자 배분을 시작으로 수입 면허, 수출 보조금, 세금 감면, 금융 대출에서도 특혜를 받았다.
독재정권은 시민과 노동자의 의사를 철저히 배제하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운영했고, 삼성은 민주주의 ‘밖’에서 최고통치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시민사회에 지배력을 행사했다.
삼성에게 부정축재자, 매판자본, 독점자본가 등의 비판이 쇄도했지만, 국가의 정치체제가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삼성은 사회 위에 군림할 수 있었다.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이 사망하고 이건희가 회장직을 세습하면서 민주화와 함께 이건희 시대가 열린다. 그러면서 삼성과 정권의 동맹의 성격도 변화한다.
이병철 시대, 즉 독재정권과의 동맹 시대에는 최고통치자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제공하면 만사형통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권력이 분산되면서 이건희는 최고통치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정부 관료, 법조인, 언론인에게도 손을 뻗쳐야 했다.
삼성에게 이것은 오히려 또 다른 기회였다. 일례로 국회의원과의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부문의 ‘삼성맨’들이 나서서 삼성을 보위했기 때문이다. 사회 전 부문에 뿌리내린 이러한 관계망에 힘입어 삼성은 독재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삼성왕국’을 건설했다.
흔히 삼성공화국이라는 말로 삼성의 전횡을 비판하곤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삼성의 존재 자체가 공화국의 작동 원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절대왕정 체제의 표현처럼, 삼성이 곧 국가로 군림하면서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부정하고 노동 인권을 유린하며 민주적 입법 질서마저 훼손하는 현실에서는 ‘삼성왕국’ 혹은 ‘삼성군주정’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정권 교체에도 삼성권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삼성권력은 개혁정부나 보수정부, 그 누구와도 짝을 이루며 확고하게 민주주의 체제에 안착했다.
삼성은 주기적인 선거로 바뀌는 정치권력의 뒤편에서 세상을 조종했다. 반면 시민은 여전히 ‘독재 대 반독재’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삼성에 의한 민주주의의 왜곡에 세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삼성권력이 새로운 지배 구도를 만들었으니 바로 삼성독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독재’는 ‘민주’ 화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더불어 ‘우리 안에 내재화된 삼성’에 주목한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과 정·관계 및 법조계, 언론을 장악한 삼성을 시민사회가 제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외적 요인만이 삼성을 제어 불가능한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안에 내재화된 삼성이다.
책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안’에서 삼성이 관여하는 정책과 제도, 문화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우리는 삼성에 감염됐고, 삼성은 우리 사회의 욕망을 표현하는 위대한 신이 됐다고 설명한다.
시장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공적 가치로 충만했던 주택, 교육, 의료 등에서도 삼성이 제공하는 생산품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찾게 됐다. 최고급 주택 래미안에서 살고, 삼성이 지원하는 학교에 다니며, 삼성의료원에서 치료받는 게 꿈이 됐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삼성 근본주의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어 한국 사회가 지금껏 쌓아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집는 자본 혁명이 이뤄진 것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는 일등 삼성만 남겼다. 한국 사회는 곧 ‘삼성 사회’였다. 삼성 사회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 자신의 권력 아래 뒀다. 개혁정부도 민주시민세력도 모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블랙홀 안에서는 이념도, 민주주의의 역사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욕망의 사다리였고 사다리를 타고 오른 자와 오르지 못한 자의 새로운 위계만이 중요했다. 지독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승자독식을 제일로 추어올리고 최고의 정점에 삼성을 놓음으로써 삼성의 지배를 허용했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삼성의 식민지가 되었다.
자본독재의 탐욕은 노동을 넘어 시민사회를 휩쓸고 궁극에는 우리의 일상을 삼성과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저자는 이에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일등주의 등 ‘우리 안의 삼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삼성을 추종하려는 자세를 갖는 한 자본독재를 막을 길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삼성 개혁 내지 재벌 개혁의 해법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력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제학자들의 재벌 개혁에 대한 발상은 착각일 뿐, 경제 민주화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견해에서다.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접했던 경제권력 삼성의 미화와 찬양이 아니라, ‘정치적 기업’ 삼성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 된 과정 즉 삼성의 흑역사를 조명한다. 삼성을 정치적 기업으로 보면 삼성권력이 국가적 문제가 된 까닭뿐만 아니라, 재벌 개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삼성과 권력의 동맹사를 통해 재벌 개혁의 정확한 목표와 의미를 밝힌다는 점에서, 삼성 재벌의 이 씨 가문이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흔들고 움직여왔는가를 상세히 전한다.
지데일리 정용진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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