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큰 나라, 평화헌법으로 무장한 호전적인 군사대국, 피해자 심리에 빠진 기묘한 가해자 국가… 일본.


사진_일본의 불안을 읽는다ㅣ권혁태 지음ㅣ교양인 펴냄극우 지식인들에게 환호한 일본 좌익 학생 운동의 자기 분열적 행보, 한반도를 ‘일본을 향해 돌출한 흉기’로 인식하는 우익 히스테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 사건에 묻어버린 조선 식민 지배와 난징 대학살의 역사, 전 세계 평화 운동의 중심을 자처하 면서 침략과 전쟁을 지워버리는 자기 기만 등 일본 사회의 표면은 이처럼 모순적이고 이중적이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전후 일본 사회를 연구해 온 일본 현대사 학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의 집단 심리를 ‘분열’ ‘트라우마’ ‘자기 기만’ ‘불안’이라는 네 가지 사회심리적 코드로 해독한다.


:::1996년 8월, 히로시마를 방문한 당시 자민당 국회의원 가메이 시즈카 중의원 의원은 이 (원폭) 위령비를 보고, “이곳 평화공원에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라니! 일본군이 원폭을 투하하지도 않았는데”라고 말했다. 2005년 7월에는 27살 난 우익 청년이 위령비에 새겨져 있는 “잘못”이라는 부분을 망치로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치적 우파에 속한 사람들의 ‘비판’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원폭 사용국인 미국에 대해 명확한 비판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나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의 성격도 동시에 지닌다. 진주만 습격 등 일본의 침략 전쟁과 원폭 사용을 인과관계로 파악할 경우, 원폭 비판이 침략 전쟁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었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자각도 없이 오히려 한반도를 ‘흉기’라 표현하는 일본 우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나타난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운동이나 사상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해 역사 왜곡 교과서의 검정 통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더해 자위대의 국외 활동에 대한 법적 족쇄도 대폭 완화됐다. 이제 군사 무장을 금지하는 ‘평화헌법’만 개정하면 일본은 명실상부한 군사 대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엔 끊임없이 군국주의의 부활과 국가주의의 강화를 주장하며 세력을 키워 가는 일본의 우익 세력이 있다. 이 책의 지은이인 권혁태는 이러한 급속한 우경화 뒤에 감춰진 일본의 ‘불안’ 심리를 지적한다.


:::일본이 스스로 자조적으로 ‘작다’고 표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스스로를 ‘작다’고 표현하는 것은 서양과 비교해서이다. (…)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작다’는 ‘큰 것’을 지향하는 것일 뿐, 스스로를 절망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은 아니다. 일본이 스스로 ‘작다’고 표현하는 것은 강자에 대한 지향의 조건 규정이고,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해 왔다. 서양에 대해 느끼는 위기와 서양을 향한 지향을 동시에 품고 있던 19세기 일본에게 ‘작은 나라 이데올로기’는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작은 나라 이데올로기’는 19세기 서양에 대한 일본의 자학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지향점을 각인시켜주는 팽창적 자기 규정이기도 한 것이다.:::



패전 후 1946년에 공포된 ‘평화헌법’으로 일본은 전쟁과 군대가 없는 ‘현실적’ 평화를 얻었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통해선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또 한국을 포함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친미 반공 군사 독재정권도 일본 전후 평화 체제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화’되면서 군사․외교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안보 소국’ 일본은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거나 한반도 분쟁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더욱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실험 등은 일본이 침략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불을 질렀다. 일본 우익은 그 불안을 국민적 불안으로 확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과 안보 대국화에 대한 일본 사회 전반의 동의를 끌어냄으로써 우경화를 획책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집단 무의식이 표출된 사건과 현상, 일화 등을 다양한 소재로 삼아 현대 일본 정신을 만들어낸 일본 사회를 해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