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개성과 마음, 감정을 지닌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감각과 지혜를 지닌 모든 생명을 이용하고 학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최소한 저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구제역 파동으로 300여만 마리의 가축을 땅속에 묻고 몸서리 치고 있는 우리 사회, 소와 돼지의 불행이 수질 오염과 토양 황폐화로 우리의 불행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_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50년, 제인 구달 외, 김옥진, 궁리.jpg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50년, 제인 구달 외, 김옥진, 궁리.

 

1960년 여름,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강 기슭 숲에서 한 여성이 쌍안경을 들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침팬지가 풀줄기를 흰개미 굴에 집어넣고 있었다. 곧 풀줄기에 흰개미들이 딸려 올라왔다. 심지어 침팬지는 풀줄기에서 잎을 떼어내고 굴 안에 찔러 넣었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고, 심지어 목적에 맞게 도구를 변형한다는 것을 관찰한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던 시절. 정식 과학 교육은 물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스물여섯 살의 그녀는 그렇게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감정을 경험한다는 등의 사실을 밝혀낸 그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희미한 경계를 세상에 알리면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이후 그는 1년에 300일 넘게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생명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환경운동가로 거듭났다.

 

“우리 행성의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희망을 잃는다는 것이다.

자연의 회복력과 불굴의 인간 정신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는 바로 제인 구달이다.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50년>은 그의 침팬지 연구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활동 모습을 사진과 함께 정리하고 있다. 침팬지 무리 속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돼 획기적인 발견을 해낸 순간에서,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세우고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애쓰는 최근의 모습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한다.

 

침팬지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기뻐하고 싸우고 아파한다. 껴안고 손을 잡고 서로 돕고 음식을 나눈다. 기쁨, 슬픔, 분노, 절망은 물론이고 육체적·정신적 고통도 느낀다. 지은이의 연구는 인간만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 침팬지와 수많은 생물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생을 살거나 서식지를 잃고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푸르고 무성하던 아프리카 숲은 벌목과 인구 증가로 헐벗었고 한 세기 전 200만 마리에 달했던 침팬지는 30만 마리로 그 수가 줄었다. 지은이가 숲의 낙원을 떠나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지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침팬지와 야생생물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 1986년부터 매일 현장 연구를 뒤로하고 침팬지와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식용을 목적으로 야생동물고기를 사고파는 일을 저지하는 활동, 의학 연구 실험실과 동물원 침팬지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활동, 밀렵꾼에 의해 고아가 된 침팬지들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활동이 그동안 쏟아온 일이다.

 

또한 제인 구달 연구소는 침팬지 서식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TACARE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주민들은 헐벗은 산에 묘목을 심고 적절한 경작법을 배우면서 토양 침식와 산사태를 막는다. 이러한 활동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침팬지는 새로 조성된 숲 덕분에 서식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연구와 활동 모습은 지구상의 생명이 연결돼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또렷하게 전해준다.

 

이러한 지은이의 메시지는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을 움직였고, 국제 청소년 환경단체인 제인 구달의 뿌리와 새싹이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나무를 심고 강을 청소하고 개를 산책시키는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의 가장 강력한 본보기를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한 여성이 우연히 야생 침팬지 연구라는 미지에 영역에 들어서면서 세상에 새로운 통찰을 던지고, 이제는 곰베 숲을 넘어 전 세계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