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미국 <네이티브 피플>은 매년 봄 연발총을 든 사냥꾼들이 버펄로 집단 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가죽만 벗겨진 채 평원에서 무더기로 썩어가는 버펄로의 모습을 본 미국 인디언 사회가 들끓었다. 서부 점령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버펄로 사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에겐 버펄로는 짐승 이상의 존재였다. 유명한 인디언 추장 ‘시팅 불’은 미국을 ‘버펄로의 나라’라고 했다. 고기를 말려 식량을 삼았고 가죽으로 옷과 신발을 만들었다. 때문에 당시 백인들의 버펄로 사냥은 인디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인디언에게 사냥이란 먹을 것을 준 자연에 감사하고 죽은 동물이 다시 회생해 돌아올 것을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들은 짐승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어우러질 때 그들은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다.

 

<우리는 모두 인디언이다> 강영길 지음ㅣ프로네시스 펴냄.


나바호족은 부자가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한다. 부자가 된 사람은 틀림없이 가족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말해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서구와 구대륙의 문화가 물질과 축적을 숭상하는 문화라면 인디언 사회는 나눔을 숭상하는 문화라고 할 만큼, 그들은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인디언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다. 물질을 보는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인디언들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했고 대지를 어머니라 불렀다. “어머니 대지를 걷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을 밟는 것이다”라고 하여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녔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법이 없었다. 당연히 인디언들은 여성을 매우 존중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났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버리고 자연 위에 군림하려 드는 자들 앞에서 이 땅은 황무지가 돼 갔다. 미국 정부는 “신이 아메리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인디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특히 나바호족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에서 벌어진 학살은 인디언 잔혹사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나바호족은 화포를 갖춘 미국 군대에 포위되어 쓰러져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 인디언 수는 1500만 여명. 현재 인디언보호구역의 인디언을 모두 합해도 100만 명이 채 안 돼 미국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도 모자란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와 마약중독자, 극빈자로 전락해 있다.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공원은 인디언 자치 정부가 세워져 있고 보조금 지급, 면세 혜택 등의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자신의 성지를 지키려 피를 흘리며 싸웠던 그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며 미국 정부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1872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미국은 62개 국립공원 과 152개의 준 국립공원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데, 국립공원의 대부분은 인디언 원주민의 문화와 유적과 관련 있는 곳이 많다.

 

대부분 인디언의 마을이거나 성지인 미국 남서부 국립공원들에 대한 탐방기인 <우리는 모두 인디언이다>는 미국 인디언들이 남긴 문명의 자취를 비롯해 백인에 의한 인디언 정복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국립공원이라는 테마를 통해 전하고 있다.

 

지은이 강영길이 꼽은 그랜드 캐니언, 모뉴먼트 밸리, 메사 베르데 등의 국립공원은 가도 가도 끝없을 것 같은 협곡의 바다, 수억 년을 흐른 강물과 바람이 조각한 바위 아치의 기기묘묘한 형상들로 가득하다. 그는 20여 년 동안 수차례 미국 국립공원을 여행하며 얻은 경험으로 상세한 여행 루트와 숙박 정보, 도로 상태와 국립공원 홈페이지 등 정보를 책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각 유적지를 통해 고고학적 사실과 역사학적 논쟁을 소개해고 있다.

 

지은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로 불리는 델리케이트 아치, 미국 국회의사당 모습을 빼닮았다 해 이름 붙여진 캐피톨 리프, 거대한 공룡뼈 화석이 지천으로 널린 다이노소어 국립기념지 등 이들 놀라운 경관들을 일컬어, “그 누구라도 인디언들처럼 애니미스트(물활론자)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말한다. 거대한 협곡 아래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뼛속 깊이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저절로 짐승과 나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공존하는 인디언을 닮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또한 박물관에 박제된 인디언 문화와 ‘인디언 투어’로 대표되는 관광 상품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인디언들이 남긴 암각화와 흙집을 직접 돌아보며 만져볼 것을 권한다. 바로 그런 여행의 자세야말로 인디언들이 지녔던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의 지혜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공감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바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