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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음으로 알아가는 나무는…라이프 2013. 1. 4. 17:01
[나무 심는 여자]
“쓰러진 나무 보다는 서 있는 나무를 더 높이 평가하고, 나무를 목재가 아닌 나무 자체로 바라보기를.”
식물은 수백만 년에 걸친 협동과 노동의 분담,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쳐 자라지 않는 사교술까지 개발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토양 속 생명 유지 시스템인 균류와의 공생으로 번성해 왔다. 자연계의 종을 초월하는 협력 관계, 즉 ‘상호 진화적인 결혼’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세상의 식량 가운데 3분의 1은 아러한 자연계의 협력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동물인 고래가 바늘귀만한 새우를 먹고 살듯, 자연계에서는 종을 초월하는 협력 관계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이런 공생 관계가 없다면 인간의 먹을거리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렇지만 문제는 세상이 매년 34억 세제곱미터의 나무를 먹어 치운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나무 심는 여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숲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과 나무 사이의 관계, 손으로 나무를 심을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지은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1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그와 동료들이 나무를 심는 무대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밴쿠버 섬, 그레이트베어우림지대, 앨버타 로키산맥, 캐나다 순상지 등을 포함해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야생의 땅이다.
나무 심는 여자, 샬럿 길, 황소연, 굿모닝미디어
그들은 헬리콥터와 트럭, 공기구명보트, 상륙작전용 운반선 등을 타고 400킬로미터 이상 이동하기도 한다. 비쭉비쭉한 잔가지가 쌓인 위험한 산비탈과 우주에서 보일 정도로 드넓은 벌목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하루에 16킬로미터 이상을 걷는다. 또 독풀과 진드기, 거머리, 피를 빠는 곤충 떼는 물론이고, 눈 폭풍에서부터 폭염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날씨와 극도의 피로를 참고 견딘다.
아찔한 모험 또한 끊이지 않는다. 퓨마를 만나고, 회색곰 어미를 만나 헬기로 탈출하기도 하고, 밍크고래, 점박이바다표범들의 환송을 받으며 보트를 타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
지은이와 함께 나무 심는 사람들은 고독감 속에서도 강력한 유대감으로 지구의 마지막 숲을 치유한다. 그들은 나무가 돈벌이가 되는 자연 자원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자연의 피조물 중 가장 우아한 공학 작품인 나무를 심는다.
"나무심기는 끌림이 있는 희망의 몸짓"
나무 심는 시즌 동안 나무 심는 사람들의 잠자리는 벌목 캠프이거나 숲속의 텐트, 이따금 욕실도 딸려 있지 않은 낡은 모텔이다. 모진 환경 속에서 지은이는 어떻게 1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게 되었을까. 그가 벌목지에서 아르바이트로 첫 묘목을 심은 때는 19살 대학생 때였다. 당시 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물었다.
큰 크기의 나무를 싹둑 베어버린 후 일률적으로 나무 심는 일이 과연 기후 변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생태적으로나 심미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만능인가? 우리는 나무를 생명으로, 나무 자체로 보지 않고 돈이 되는 목재로 계속 공급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수백만 유기체를 포함한 숲의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일에 나설 것인가?
지은이가 이처럼 스스로 묻고 본격적으로 나무 심는 일에 뛰어든 것은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나무 심는 일은 어떤 기계적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 매우 거친 육체노동이다. 그러나 그는 숲이 뿜어내는 경이로운 존재감에 이끌려 오직 손과 발로 나무 심는 일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에게 나무 심는 일은 이상한 전율과 끌림이 있는 희망의 몸짓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우글거리는 숲에 서면, 만지고 냄새 맡고 바라볼 수 있는 다채로운 것들이 그녀의 삶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나무 심는 동안 지은이가 목격한 것은 벌목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적 충격이었다. 캐나다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100배 크기로 세계 2위지만 숲은 캐나다 동해안에서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1500만 제곱마일 이상 뻗어 있으며 나라의 절반 이상을 뒤덮고 있다. 때문에 캐나다 숲에는 세계의 주요 목재 수출업자들이 몰려 있으며 벌목산업의 부흥과 침체에 따라 나무의 운명도 좌우되고 있다.
지은이가 알게 된 또 하나의 충격은 인간의 탐욕이 숲의 파괴를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나무를 생명으로 보지 못하고 직물에서부터 비행기 부품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다양한 물건으로 고안되는 나무의 다용성만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나무는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베어지고 쪼개져서 가공제품으로 태어난다. 별별 종류의 휴지 제품은 말할 것도 없다. 펄프 죽을 정제하면 나무 농축 주스가 되는데, 이를 이용하면 향유, 광택제, 아세톤, 테레빈유, 매니큐어 등이 만들어진다. 나무 추출액은 샴푸와 면도 크림, 화장품에도 첨가된다.
나무는 인조견, 합성수지로도 변환된다. 선탠 크림과 여드름 연고, 노화 방지 화장품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볼링공과 스포츠 헬멧이 되기도 한다. 나무의 성장과 소멸의 역사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무 심는 동안 지은이는 아주 작은 나무의 씨앗이 느린 성장을 통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큰 유기체 생물이 돼 가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그는 한 그루 나무에서도 인간사의 온갖 은유를 읽어 낸다. 그가 눈과 마음으로 알게 된 나무는 공동체적 존재다.
나무들도 바람과 악천후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을 공중에 뿜어내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땅속에서는 각자의 뿌리를 얽어서 서로에게 의지한다. 수많은 나무들이 한정된 공간에 밀집해 있는 우림에서는 나무들도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는 지혜를 발휘하며 인간의 사회처럼 공동체 생활을 한다.
지은이는 “인간의 손은 나무를 교체할 수는 있어도 원래의 숲을 되살리지는 못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나무 심는 일이 위험에 처한 지구의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를 처방하는 데에 희망이 된다고 덧붙힌다. 여전히 나무는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며, 숲은 무수한 생명체들에게 풍요로운 서식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최초의 생명체인 청록색 조류가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해 바다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들은 엽록소의 출현과 함께 서서히 세상을 지배하며 육지식물의 탄생을 이끌었다. 단세포 유기체 식물들이 엄청나게 번성해 과밀 왕국이 됐지만 이들은 자멸의 길을 걷는 대신에 서로 협조를 했다. 식물은 뿌리 대 새싹으로 노동의 분담을 선택했다. 식물의 잎은 광합성을 했고, 토양 속 세포는 영양을 배달했다. 오늘날의 나무는 최초의 단세포 식물들이 세력 확장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다.
책에는 현대의 거대한 벌목장에서, 그리고 고대 로마인의 전쟁, 십자군 원정, 사라진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문명의 이면을 통해서도 인간과 함께한 나무의 운명, 나무에 대한 숭배와 약탈의 역사가 소개된다.
책에 따르면 나무의 운명은 멀리 고대 문명국의 형성과 소멸에도 관계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목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도시 및 기간시설은 모두 나무로 건설됐다. 시민들은 나무를 이용해 요리와 난방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금속을 제련해 도구와 무기, 기계를 만들었고 벽돌과 도자기를 구웠다.
그러나 인구 증가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인근의 나무를 모두 소비해 버렸다. 숲이 사라지자 문명도 사라지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계곡의 습지대는 지금은 10%만이 남았다. 삼나무로 배를 건조하여 해상무역을 해야 했던 페니키아인들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을 걸었고, 그 여파로 지금의 레바논의 삼나무 숲은 메마른 언덕으로 쪼그라들었다. 로마는 목재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십자군 원정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숲을 찾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유럽인들에 의해 1900년까지 미국의 숲은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철도를 건설하거나 술을 저장하기 위한 오크통을 만드는 데에도 나무는 이용됐다.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벌목 산업은 마침내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인 캐나다까지 진출했다. 벌목용 동력 사슬톱이 발명되자 벌목은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문명의 발달 속도만큼이나 숲이 사라져 갔다. 유럽인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땅을 인간이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는데, 그들의 사고방식은 현대의 산림 관리 방식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책은 지은이가 숲에서 깨달은 것들, 함께 나무 심는 사람들의 땀과 애잔한 사연, 그들만의 독특한 하위문화를 소개하면서 나무 공동체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의 눈과 귀로 나무를 비롯한 숲의 생명체 활동을 정교한 시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글 김세헌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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