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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주고 사랑해야 할 것들라이프 2013. 5. 6. 23:58
[아날로그 사랑법]
<지데일리 손정우기자>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사람들의 경제적 삶과 주머니 사정을 돌보며 살던 우석훈이 왜 길고양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 걸까. 걸핏하면 집 나가고, 툭하면 아프고 어설픈 그들에게 꼬박 밥을 챙겨주고 새로 이사 간 집에까지 데려가 6개월을 적응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해가면서 도대체 그는 길고양이들에게서 어떤 답을 찾았던 걸까.
<아날로그 사랑법>은 어쩌다 집 마당에 정착한 길고양이 가족들과 인연을 쌓고, 일상을 점차 공유하면서 지은이 우석훈이 깨달은 길냥이식 행복 철학과 아날로그 사랑법을 담은 책이다. 삶이 척박하고 혹독해 평균수명이 2~3년밖에 안 되는 길고양이들이 그 짧은 생에서도 아낌없이 서로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뤄 자신만의 룰을 지키며 사는 모습을 보며, 지은이는 돈과 이익으로 삶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날로그 사랑법> 우석훈 지음, 상상너머 펴냄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시의 평온과 잠시의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 걸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린 너무 많은 걸 부여잡으려고 한다. 세상일이란 게 안타깝다고 붙잡고 있어 봐야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능력치 이상으로 버둥거리다간 사람 추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서 있을 때 긴장이 가장 적고, 후회도 적은 것 아니겠는가?
지은이는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하게 사는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꼬질꼬질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또한 찾았다. 내가 없으면 힘들고 아픈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힘이 돼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하 20도의 날씨에 시린 손을 비비며 매일같이 고양이 똥을 치워줬으니 인간으로 태어나 좋은 일 하나는 적어도 했고, 지옥에 떨어질 일도 없으니 더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졌다는 그의 고백은 흥미롭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 연출해내는 일상의 숨구멍 같은 풍경들에 대한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날로그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다.
❐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나눠야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존재가 아니던가. 어쨌든 우리는 모두 삶에 한 번쯤은, 이런 아기 고양이들처럼, 지극하게 돌봄을 받던 시절이 있던 존재들이다.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지금 어떤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든, 지금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든 간에, 우리도 한때 다 저렇게 엄마들이 극진으로 돌보던, 그런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 위에서, 지금의 이 비루한 삶이라도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학창 시절 사진반을 할 만큼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그가 오랫동안 내려놓은 카메라를 다시 집어 들게 된 건 고양이들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책은 지은이가 지난 4년 간 길고양이 식솔들에게 밥을 주며 일어난 일상의 변화와 초보 아빠로 좌충우돌하며 아기를 키우는 아비의 고백이 시대의 고민과 삶의 문제들과 함께 맞물리고 있다.
정치와 경제를 이야기했던 지은이의 전작들과 달리 이 책은 소소한 삶에서 터득한 행복과 사랑의 원형을 날것의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책 어느 곳을 펼쳐도 만날 수 있는 이들의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일상을 보면 왜 그가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매서운 겨울을 꼼짝없이 밖에서 나야 하지만 자기들끼리 부둥켜안고 체온을 서로 나누는 부부 고양이, 새끼들 밥을 먼저 먹이고 꼭 남은 걸 먹는 엄마 고양이, 어떤 시련이 닥쳐도 언제나 천하태평인 명랑한 아들 고양이, 자기감정에 있어서 절대로 정직한 도도한 야옹구 등 책 속에는 고양이들의 희로애락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야생성을 지닌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적게 개입하면서 그들이 가장 편안해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이러한 여정을 통해 지은이가 길어 올린 것은 단순히 동물과 교감하는 법만이 아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망가진 자연의 상징’과도 같은 고양이라는 존재를 통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서로 상생하는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사람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회복시켜준다는 데 있다.
무심히 스쳐 지났던 작고 약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돌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내 삶에 작은 행복들이 찾아왔고,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었다는 그의 이야기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 삶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하는 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세상에는 마음 주고 사랑할 것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짧고 굵게’를 외쳤던 20대와 끝없이 헤맸던 30대를 지나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인 지은이는 앞으로 남은 인생의 목표를 남성성을 버리고, ‘아줌마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을 보고 밥을 짓고, 고양이들을 부지런히 돌보며, 더 많은 시간을 아기와 놀아주는 데 보낼 계획이라는 그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에게 생활 속 돌봄을 하나씩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돌보고 가꾸는 것을 철저히 여성과 엄마의 몫으로 떠넘기고, 모든 걸 돈으로 때우기만 하는 남자들에게 더 외로워지고 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랑은 말과 돈으로 하는 게 아닌 육체적 피곤함을 동반하는 돌봄이자 손끝으로 전하는 온기에 있다는 것을 오롯이 담은 이 책은 이타적인 삶의 즐거움과 나눔의 미학을 일상에서 누리자고 다독인다.
타인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자신도 돌볼 줄 아는 사람이며, 인간뿐만이 아닌 생명을 품은 모든 존재에 대한 따뜻한 상상력과 생태적 감수성을 지니는 것. 이것이 바로 지은이가 생각하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자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절대 유행타지 않을 궁극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끝없는 경쟁에 치이며, 외로움과 불안,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 시달리다 결국 멘토와 힐링에 기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건강한 치유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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