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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진 뒷골목과의 조우
    라이프 2015. 12. 11. 12:18

    [어둠의 자식들]


    “밤낮 우리는 못산다는 것 하나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무시당한 채 멋대로 철거당하고 끌리는 대로 길바닥에 내쫓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하지 않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도 모이면 힘이 됩니다.” 


    <어둠의 자식들> 이철용 지음ㅣ새움 펴냄


    30여 년 전에 민중이념으로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든 <어둠의 자식들>. 이 책이 지금 다시 세상에 나온 이유는 현재에도 꼬방동네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꼬방동네 사람들을 비롯해 힘과 돈이 없어 고난을 겪는 수많은 미생들(비정규직, N포세대, 흙수저, 청년실업 100만명,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등), 가지지 못해 고통 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어둠의 자식들>은 1980년대 초 이동철이라는 실제 인물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엮은 소설로, 당시 이색적인 소재와 문체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모두들 잘 살아보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나락 같은 삶의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의 초상이 이 소설에는 넘쳐 난다. 


    창녀, 오입쟁이들, 주정꾼들, 쪽쟁이들, 골목마다 돈 따먹기 하는 사람들, 쌍욕을 하면서 팬티 바람으로 설치는 여자들, 탕치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막장 인생에서 연대와 사랑, 희망을 찾기까지. 이 소설은 화려한 조명 속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그 시절, 도시 빈민들의 뒷골목으로 안내한다. 


    이 책은 1980년대 당시 빈민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이철용(필명 이동철)이 쓰고 황석영이 윤문한 소설이다. 저자의 경험과 취재가 녹아든 생생한 현장 묘사를 통해 어두운 뒷골목의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철용은 “다만 숨 쉬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도 한마디쯤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썼다”고 동기를 밝혔으며, 황석영은 “기록을 정리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기록한 삶이 이러할진대 과연 소설가란 무엇을 하는 작자들인가 되물어보곤 하였다”고 말했다. 


    기지촌에서 자란 동철은 어릴 적 앓은 결핵성 관절염으로 왼쪽 다리를 절며 음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동철은 호객 행위를 하던 중 자신을 놀리는 행상 청년의 등을 식칼로 찌르고 가출한다. 


    동철은 보호소에 끌려갔다 출소한 뒤, 친구 두꺼비의 소개로 포주 ‘꼬마 강’의 가게에서 기둥서방으로 일한다. 동철은 순진한 시골 여성을 꼬드겨 창녀가 되게 하는 ‘탕치기’를 하거나 시비가 붙은 손님들을 처리해주며 지낸다. 


    그러다 동철은 ‘한탕의 꿈’을 갖고 친구들과 금은방을 턴다. 동철은 경찰의 후리가리(불심검문)를 피해 태봉과 함께 정선의 철도 공사장으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인부들과 파업을 하던 중 동철은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이해하게 된다. 


    사측과 대립하던 동철은 현장에서도 외면 받고 공사장을 떠나던 차에 대합실에서 형사에게 붙잡히고 만다. 교도소에 수감된 동철은 성경을 열네 번이나 읽고 가엾은 자신의 삶을 깨달은 후 변화하게 된다. 


    동철은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노모와 함께 리어카 행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동네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며 약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마침내 야학 ‘은성학원’을 세우고 자신과 뜻이 같은 공병호 목사를 만나 세례를 받는다. 약자들과 철거민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동철은 ‘사랑’이야말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 책은 무엇보다 뒷골목의 충격적인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동학대와 빈번한 범죄, 사기, 도박, 절도, 공직비리, 여성인신매매, 매매춘, 살인까지 이동철이 몸담은 뒷골목의 세계는 거칠고 끔찍하기 짝이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의 삶은 허구가 아닌 진실로 소설을 장악한다. 양아치라기엔 무겁고, 나쁜 놈이라기엔 정 많고, 좋은 놈이라기엔 비겁한 주인공 이동철의 성장과정과 행적은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궤적을 반영한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생생한 민낯으로 만날 수 있다.


    책은 마치 남의 나신을 넋 놓고 구경하다 문득 자기 자신이 벌거숭이가 돼 수많은 관객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처럼 당혹감을 안겨준다. 등장인물들의 패악한 범죄와 빈번한 배신, 두꺼운 낯짝과 몰염치한 행동들은 저절로 욕지거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밝음 속에서는 어둠이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는 밝음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욕망이 윤리를 삼켜버린 어둠 속 뒷골목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고, 자신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마주하게 만든다.


    지데일리 손정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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