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통계학자] 


신문과 뉴스에서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의 핵심은 바로 숫자다. 통계라는 가공 절차를 거친 숫자가 ‘정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통계학자> 조지 박스 지음ㅣ박중양 옮김ㅣ생각의힘 펴냄


각종 그래프와 도표와 함께 제시되는 수익률, 다양한 리서치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와 여론조사. 실업률, 출산율, 이혼율,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이 다양한 수치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한다. 결국 우리에게 제공된 숫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성공의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통계학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보 해석 능력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통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곧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르게 판단하는 기초가 된다.


19세기 말 진화론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한 통계학은 20세기 과학혁명과 더불어 학문으로 정립되고 과학 연구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그리고 큰 흔적을 남긴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세계적인 통계학자로 명성이 높은 조지 박스다. 


‘통계학은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생성하고 분석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친숙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흔히 여러 개의 변수를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실험자가 통제하는 변수를 ‘입력’ 또는 ‘요인’이라고 하고, 실험 결과에서 측정하는 변수를 ‘측정’ 또는 ‘반응’이라고 한다. 반응이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경우에는 한 번에 한 요인만 변경해서 실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0여 년 전 피셔는 이 방법이 비효율적이고, 어려 개의 요인을 동시에 변화시키면서 실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한 번에 하나의 요인만 변경하는 실험을 가르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208~209쪽) 


조지 박스의 자서전인 <어쩌다 보니 통계학자>는 통계와 관련하 어려운 전문용어나 수식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어릴 적부터 시작된 흥미진진한 삶의 여정과 연구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 전체에 걸쳐 박스가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모든 연구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박스는 통계적 방법이 현실의 문제에 기인하고 현실의 문제와 연결될 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줬다.


박스는 통계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통계학을 연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줬고,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는 통계학이 어떤 것보다 더 효율적이 도구임을 일깨워줬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신문을 가지러 가는데, 아들이 자신과 보조를 맞추기 힘들어하자 “미안, 아빠가 너무 빨리 걷자?”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니 아빠, 빨리 걷고 있던 거 나야”라고 말했다. 그저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과학적 발견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아들의 관점은 옳지만 쉽게 다가오지 않는 반면 아버지의 관점은 쉽게 다가오지만 옳지 않다. 이와 같이 유머와 과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있는 것은 결코 우여이 아니다. 훌륭한 과학은 자연이 우리에게 하는 농담을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93세의 나이에 뒤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여럿 보인다.’(17쪽)


‘어릴 적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이야기를 해주거나 책을 읽어주었다. 외할머니를 통해서 접하게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28쪽)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어 보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책을 처음부터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가 색맹에다가 지문도 없고, 93세 먹은 늙은이라는 걸 알 것이다. 타이핑도 잘 못하고 컴퓨터도 사용할 줄 모르는 노인네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 없다. 내가 다음에 할 일은…(303쪽)


가난한 영국 가정에서 태어난 박스는 학창시절 화학을 잘해 고향의 폐수처리장에서 공장 폐수의 정화를 담당하던 화학자의 조수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도 런던 대학에서 학업을 병행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20세 때에 군대에 입대, 화학전 방어 실험기지에 배치된다. 


박스는 이곳에서 독가스의 효과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하며 통계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는 화학자가 되려했던 애초의 계획을 접고 통계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박스는 군 제대 후 ICI라는 회사에서 8년간 일한 후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방문연구교수로 초빙을 받으면서 학계에 발을 딛는다. 


이후 프린스턴을 거쳐 1960년에 통계학과를 새로 만든위스콘신 주립대학교 메디슨으로 옮겨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남겼다. 


‘나는 항상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고 제자들을 독려했고, 영어를 잘하든 잘하지 않든 상관없이 논문 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애썼다. 1970년대에는 자주 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학생들 논문을 읽고 느낀 점과 개선점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전달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방법이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 물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 적도 많았다. 주중에 출장을 가는 경우에는 주말에 학생들을 만났는데 여러 명이 함께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곤 했다.’(171쪽)


박스는 인간적인 면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신사이고 자상한 아버지이며 헌신적인 배우자”라고 입을 모은다. 


전공과 지위 불문하고 누구나 참석해 격식 없이 이야기를 나눴던 ‘월요일 밤의 맥주 모임’은 그의 열린 태도를 잘 보여준다. 박스는 학생들과의 촌극을 매년 기획하는 등 유머 있는 이야기꾼으로서도 탁월한 모습도 보였다. 


박스는 현장의 필요에 의해 통계를 접했고, 이러한 이유로 평생 동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통계학을 받아들였다. 


그는 품질 관리, 실험계획법, 시계열 분석, 베이즈 추론 등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를 통해 통계학이 추상 세계의 그 무엇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살아있는 것임을 평생에 걸쳐 증명했다. 


또한 그는 과학적 탐구에서 통계학이 핵심적인 역학을 하는 변화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했다. 


이 책은 20세기 통계혁명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박스의 삶을 통해 통계학, 나아가 과학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변화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지데일리 손정우 기자

gdaily4u@gmail.com


Posted by have a Good story, gdaily 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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