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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럼바인, 여전히 숨기고 있는 것들
    비즈니스존 2017. 9. 15. 11:01

    “세상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ㅣ장호연 옮김ㅣ문학동네 펴냄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두 소년이 총과 폭탄을 짊어지고 이 지역 콜럼바인 고등학교로 향한다. 소년 중 한 명인 에릭 해리스가 직접 제작한 사제폭탄들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 더 큰 참사는 가까스로 면했으나, 이어진 총격으로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에릭 해리스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모든 장비를 직접 챙겼다. 사건과 관련된 영상과 음성자료, 심지어 영수증까지 꼼꼼하게 남겼다. 에릭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주길 바랐다. 


    반면 딜런 클레볼드는 심한 우울증을 앓던 소년이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까지도 스스로 “바보짓”이라고 적은 바 있는 그 끔찍한 학살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줄곧 자살을 생각했으며, 짝사랑하던 한 소녀를 위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가득 채웠다.

     

    공격은 길지 않았다. 계획대로였다면 학생식당에 설치한 대형 폭탄들이 터져 최대 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겠지만, 폭탄이 터지지 않자 에릭과 딜런은 당황했다. 


    교내 건물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대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공격 시작 30여 분 만이었다.

     

    교내 여자농구팀을 감독하던 데이브 샌더스 코치는 아이들을 대피시키다 총에 맞았지만 세 시간 넘도록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데이브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처음 접수된 것은 총에 맞은 지 불과 20여 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온다던 구조대는 끝끝내 오지 않았고,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머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던 패트릭 아일랜드는 한 시간여가 지났을 무렵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넘어 탈출하려 시도하다 가까스로 구조됐다. 심각한 부상과 뇌 손상에도 엄청난 의지를 보여준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1년 뒤 졸업식에서 고별사를 낭독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지역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 무책임하게 대응했고, 언론은 제대로 된 취재는커녕 흥미를 끌기 위한 가십성 기사들을 내보냈다. 몇몇 극성스러운 교회들은 이 사건을 선교의 기회로 이용하려 했고, 법정에선 피해자 가족과 지방정부와의 진흙탕 싸움이 계속됐다. 


    지지부진한 후속처리에 지친 일부 시민들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돈을 밝힌다며 2차 가해를 시작했다. 모두 감정이 격해진 탓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 사건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교내에서 따돌림받던 아이들이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이고 단순한 사고로 변질돼 알려진 채로 남았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 무리의 폭력적인 학생들이 저지른 일이며 이들이 좀더 큰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괴담도 돌았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저자 데이브 컬런은 사건이 일어난 당일 오후부터 오랜 기간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 역시 사건이 처음 보도될 당시엔 여러 가지 오해와 헛소문들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10년에 걸친 조사와 취재 끝에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진실을 드러냈다. 


    저자는 특히 두 10대 살인자의 심리 상태를 깊이 파고들어 대학살을 주도한 무정하고 야만적인 사이코패스 에릭 해리스와 자살 충동과 짝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집착에 시달린 우울증 환자 딜런 클레볼드에 대한 진실을 드러낸다.

     

    그는 두 소년이 도처에 남긴 기록과 가족, 친구 등 주변인물과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날카롭게 분석해 재구성해냈다. 


    그가 그려낸 사건의 정황은 단순히 시간적, 공간적 재현에만 그치지 않는다. 100여 명이 넘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콜럼바인 총격사건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인다. 


    저자는 직접 취재를 통해 그간 묻혀 있었던 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밝혀냈고, 필요에 따라 학자들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들을 인터뷰하고,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관찰하고, 수만 쪽의 공개문건을 빠짐없이 검토하고, 사건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상황과 추가로 공개된 자료들까지도 자세히 확인했다. 


    생존자들의 정신적인 피해는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대부분의 주민들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한동안 시달렸으며,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결국에는 사건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비극은 이미 일어났고, 아직 몇몇 사람들은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콜럼바인에 다니는 학생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학교를 끔찍한 사건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범죄와 사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미비하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경찰의 무능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올해 6월 14일 일어난 런던의 그렌펠타워 화재에 대한 영국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여전히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콜럼바인은 기억돼야 하고, 남겨진 사람들은 이 비극이 무너뜨린 자리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좀더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날것의 폭력과 무기력에 빠진 지역사회를 세밀히 묘사하고 경찰의 커다란 실수와 은폐 공작을 폭로하는 이 책은 두 살인자의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편 범죄의 신호에 무심한 우리 시대에 준엄한 울림을 전한다.


    지데일리 한주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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