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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하기를 다시 생각하기
    문화 2018. 8. 6. 19:48


    일본의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 다쿠.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시대와 문화를 꿰뚫는 시각을 바탕으로 제품의 본질을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껌이나 우유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의 디자인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등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두각을 드러내온 그는 나아가 디자인의 단면을 아트워크로서 고찰하는 전시 '디자인 해부' 등 참신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콘텐츠 제작자, 브랜드 전략가, 전시 기획자로 활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삶을 읽는 사고>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토 다쿠의 책이다. 디자인과 삶에 관한 특유의 고찰을 진솔하게 풀어낸 에세이로 이뤄져 있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고회사 덴쓰(電通)에서 일을 시작한 사토 다쿠는 일찍이 독립해 닛카위스키 퓨어몰트,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유업 맛있는우유 패키지 디자인 같은 유명한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아울러 ‘플리츠 플리즈 이세이 미야케’ 프로젝트, 가나자와 21세기현대미술관과 도쿄과학박물관의 아이덴티티 작업, 무사시노미술대학 미술관과 도서관의 로고 및 사이니지, 가구 디자인 작업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그는 대학 시절까지는 밴드에서 퍼커션을 연주하며 음악을 전업으로 삼으려 한 적도 있다. 지금도 라틴음악과 서핑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베테랑이고, ‘낡고 이상한 가게’를 직접 찾아다니며 물건을 고르는 독특한 취미도 있다. 


    또 ‘디자인 공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소유자로서 NHK '일본어로 놀자' 아트 디렉션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교육방송 프로그램 '디자인 아'의 제작자로 뛰어들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생활과 세계 전반을 아울러 사고하는 그의 예리하고도 흥미로운 견해가 담겨 있다. 


    사토 다쿠의 삶과 디자인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상의 본질을 향하려 하는 솔직한 접근과 시각이다. 


    그가 일본 닛카위스키의 ‘퓨어몰트’를 상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주도한 과정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위스키 광고를 담당하게 된 그가 ‘사실 별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위스키가 없다’는 정직한 동기에서 발상을 하기 시작해 ‘그렇다면 어떤 위스키가 마시고 싶은가?’ ‘맛 좋고 향기롭게 숙성된 위스키의 매력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어떤 술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등의 질문을 설정하고 발로 뛰며 하나씩 풀어나가는 일화 속에, 자신에게 납득 가능하고 타인에게 와닿을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답을 찾아나가는 진중한 방식이 드러난다. 


    사토 다쿠가 기획하고 진행한 전시 '디자인 해부'도 이런 면모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는 일본 점유율 1위 상품 롯데 자일리톨 껌, 메이지 맛있는우유를 비롯해 후지필름의 일회용카메라, 다카라토미의 리카짱 인형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징적인 상품을 하나씩 주제로 삼았다. 


    더불어 사물 표면의 그래픽 디자인에서부터 물건의 감촉에 관한 정보 등 심층적인 정보를 해부하듯 펼쳐놓아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에 깃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하고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물과 디자인을 대하는 그의 관점이 잘 담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부터 진행 실무까지, 생생하고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사토 다쿠는 오래전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기까지 더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자신만의 태도를 갖고 있다. 그 핵심은 책의 원제이기도 한 ‘소성적 사고’다. 


    <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지음, 이정환 옮김(안그라픽스·2018)

    일본어로나 한국어로나 조금 낯선 울림을 가진 ‘소성(塑性)’이란 부드러움의 한 가지 형태로 ‘탄성’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용수철처럼 잠시 변했다가도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부드러움이 탄성이라면, 소성은 마치 찰흙처럼 꾹 누르면 아예 형태가 변해버리는 부드러움을 말한다. 


    대개 세상에선 자기 형태를 유지하는 탄성이야말로 제대로 된 디자인의 방향이고 삶의 태도라고 하지만, 사토 다쿠는 자아를 억제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때마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순수하게 대응하는 다양한 ‘소성’의 스킬이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흔히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자아’나 ‘개성’보다는 ‘유연함’을 강조하거나, ‘적당함’ ‘위화감’처럼 부정적으로 통용되는 개념들의 숨겨진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군침 돌게 하는 디자인’ 등 재미있고도 새로운 발상을 제시하는 그의 특별한 시각은 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본질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강조하는 사토 다쿠는 그래서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디자인이란 자연스레 도덕과도 연결되며 인류를 둘러싼 환경 전반을 생각하는 행위이므로 지역과 사회에서 디자인을 가장 효율적인 활용할 방식에 대해, 또 후배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성장해나가야 하는지 방향에 대해 제시하는 실천적 활동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펼쳐놓은 그의 경험적 고찰들은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우직하고 진지하다. 세상의 변화에도 쉽게 가치가 흔들리지 않을 만한 작업을 해온 그의 힘은 바로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그 태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지데일리 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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