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만 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아이들은 가르치러 학교에 와야 한다. 자기 말을 하러 와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피어난다.”

 

탁동철 선생. 그는 참으로 요즘 보기 드문 선생, 흔치 않은 사람이다. 얼핏 책 앞자락을 읽은 누군가는 그를 학생들에게 휘둘려 뭐하나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얼뜨기 시골 선생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달려라 탁샘, 탁동철, 양철북

 

겉모습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선한 눈, 수줍은 모습, 조촐한 옷차림, 꾸미지 않은 매무새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선생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선생과 오랜 시간 함께한 동무들은 그를 “너무나 귀한 선생”이라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가 소중하고 귀한 까닭은 바로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것들의 힘을 알고 그것을 소중하게 키워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몸으로 부딪쳐 경험하고,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기억을 이어갈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운동장 귀퉁이 조그만 논을 만들어 모를 심어 가꾸고, 그 쌀로 교실에서 아이들과 밥을 지어 먹는다. 아이들과 함께 닭장을 지어 닭과 토끼도 키우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긴다. 동물 발자국 관찰하러 산속으로 들어가고,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러 나간다.

 

목청을 돋워 축척을 설명하다가 아이들이 못 알아듣자 버럭 화를 내다가도 곧바로 후회하며 “다음엔 사진 들고 와서 ‘봐라, 얼굴은 이만 한데 사진은 요만하다. 이렇게 줄여 놓은 게 축척이다’라고 끝내야지”라고 다짐한다. ‘밑변과 높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가출한 성택이를 붙잡기 위해 뒤를 밟기도 한다.

 

‘온도에 따른 물고기의 호흡 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선 아이들과 고기를 낚고, 실험하고는 ‘새롭게 안 것’으로 “물고기는 얼음물에서 기절하고 사람은 열심히 가르쳐 주면 기절한다”는 재밌는 글을 남긴다. 이 닦기 싫어하는 남자 아이들과 제발 좀 이 닦으라는 여자 아이들을 서로 논쟁 붙이면서 “나는 더 재미있는 쪽이 무조건 옳다고 본다”고 능청을 떤다.

 

벽에 자기에 대해 욕을 남긴 아이를 찾겠다며 여기 저기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들을 하고 다니는 모습에 이르면 누구나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다. 선생은 끝없이 아이들과 옥신각신하고, 이야기하고, 반성하고 화해하며 성장한다. 그의 교실에는 선생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가 돋보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아이들에게 설득당하며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다. 몸으로 부딪혀 겪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비로소 성장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한다. 타고난 이야기꾼과 같은 그의 글에 빠져 신나게 읽다보면, 문득 우리가 놓치며 사는 진정한 삶의 본질과 교육이 뭘까 고민하게 된다.

 

탁 선생은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세상’을 살 길 바란다. 어른이 쉽게 가르쳐준 이름을 외워 세상의 것들을 배우고, 어른이 강요하는 권위에 길들여 머리 숙이지 않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선생 역시 아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탁 선생은 학급 운영을 할 때도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아이들 의견이다. 학생도 많지 않은 작은 분교에서 급식 운영 여부를 결정할 때도 그는 급식을 반대하는 아이들과 찬성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책은 십 수년 동안 교실에서 산과 계곡에서 아이들과 공부하고, 놀고, 싸우고, 연극하고, 토론하는 등 자신의 어릴 적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따뜻한 기억을 엮어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