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몸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됐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이른바 ‘꽃미남’이나 ‘짐승돌’ 등으로 상징화하는 팬덤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패션과 다이어트 등 전통적인 몸 관련 시장에 더해 요즘엔 청소년 ‘쁘띠성형’이나 어린이 ‘키 크기’ 시장이 활황이다. 이렇게 몸에 대한 관심이 작렬하는 시대 현상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그 관심이 대체로 ‘피지컬’한 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외모 가꾸기’로 단순화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몸의 다른 구성 요소인 정신과의 조화를 간과하는 측면, 보여주기에 집중할 뿐 스스로 보기에 소홀한 측면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내 몸을 찾습니다>는 성장기 우리 청소년들이 현대 사회에서 몸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자기 몸을 주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지_내 몸을 찾습니다, 몸문화연구소, 양철북.jpg *내 몸을 찾습니다, 몸문화연구소, 양철북

 

✔ 무대 위에서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발레리나 강수진)의 한 부분이라면, 뭉그러진 발은 그녀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감상자들은 그녀의 한 부분(존재의 밝은 면)이 느끼게 해 주는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고, 그녀의 숨겨진 다른 부분(존재의 어두운 면)이 감내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지요. 감상자들은 이미지로서의 살덩어리는 알아차리고 보지만 정신과 육체의 통합체인 몸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며, 존재의 겉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존재의 본질에는 눈을 감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감은 한쪽에만 치우쳐 있으며 불완전합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외모 지상주의도 한쪽에 치우쳐 있으며 똑같은 것을 강요하는 문화 현상입니다.

 

청소년기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때다. 청소년기엔 몸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데, 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오면서 그전까지 중성처럼 보였던 몸이 갑자기 남성적인 몸으로, 여성적인 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성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진다. 청소년들이 다른 세대들보다 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이 몸에 대해 갖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매우 인색한 것이 우리 사회다. 현대 사회에서 몸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헐벗고 굶주렸던 과거에는 몸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도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1990년대 초반부터 학계에서도 몸과 관련한 학술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 특히 여성학, 사회학, 한의학, 문학 분야에서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학제간 통합 연구가 얼마나 이뤄졌을까 의문이다.

 

먼저 인터넷서점에서 ‘몸’이라고 쳐보자. 많은 책이 뜨지만 크게 ‘건강’과 ‘몸 알기’로 나눌 수 있다. ‘건강’은 건강식, 다이어트 등 건강한 몸을 가꾸는 방법에 대한 성인용 실용서들이고, ‘몸 알기’는 과학과 의학 차원에서 신체에 대해 공부하는 어린이 교양서들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볼 수 있는 몸 관련 책은 태부족이다. 청소년의 호기심이 크고 부모들의 관심도 높은데 정작 참고할 만한 책이 없는 주제가 바로 ‘몸’인 것이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몸에 대한 교육은 어떤가. 전혀 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분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 교과에선 이원론 등 육체와 정신의 관계와 같은 철학적 문제를, 사회 교과에서는 성 차별과 인종 차별 등 사회적 문제를, 생물이나 체육 교과에서는 성교육을 하는 식이다. 각각의 교과에서 다루는 몸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이 몸에 대해 통합적 인식을 갖기란 힘들다.

 

‘외모와 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몸’과 ‘성과 몸’을 거쳐 ‘몸과 정체성’으로 마무리된다. 책은 우선 ‘패션’ ‘노화’ ‘미의 기준’ 등의 주제를 통해 ‘외모 지상주의’의 본질을 파헤친다. 이어 ‘디지털 게임’과 ‘사이보그’의 문제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살피고, ‘죽음’과 ‘본능’의 문제를 통해 현대 문명이 몸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더불어 ‘야동’ ‘예술과 외설’ ‘성 정체성’ ‘가부장제’ 등을 통해 섹스로서의 성과 젠더로서의 성을 고루 살피는 한편, 몸과 정체성 문제를 ‘시선’ ‘차별’ ‘개인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 개량된 옷은 일단 여성들의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가슴을 압박하던 것이 줄어들고, 활동성이 좋아졌으며, 치마가 짧아진 덕분에 바닥의 먼지를 끌고 다니지 않게 되어 위생적으로도 바람직했지요. 그런데 건강을 위해 여성들의 옷을 바꾸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전과는 다르게 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짧아진 치마 길이 때문에 “각선미”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고 과거와는 다른 미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짧아진 치마 밑으로 보이는 다리의 곡선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 이것은 새로운 패션이 만들어 낸 새로운 ‘몸 라인’이었습니다.

 

책은 흔히 몸 하면 생각하는 패션, 다이어트, 성형 수술 이외에도 죽음, 본능, 공동체 등이 모두 몸과 관계돼 설명하고 있다. 또 몸의 변화가 패션의 변화를 이끈 것이 아니라 ‘패션이 몸을 바꾼’ 것이라는 주장, 스마트폰을 손에서 한시도 놓지 못하는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가 아닐까’라는 문제제기, 노화를 받아들이는 남녀의 차이가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은 모두 ‘몸의 정체성’ 문제로 수렴되고 있다. ‘몸의 정체성’을 핵심 주제로 잡은 이유는 청소년기가 몸의 변화가 정체성의 혼란을 부채질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며, 몸 공부의 궁극이 내 몸의 정체를 이해하고 제대로 가꾸기 위함이다.

 

전문 연구자들이 청소년과 만남을 통해 쓴 몸 교양서인 이 책은 몸을 그저 살덩어리가 아니라 인격을 담고 있는 전체로서 인식할 것, 외모 가꾸기의 본질을 깨닫고 확실한 자기 주관을 갖을 것, 보여지는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소외된 아름다움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