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서 한다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직 어린애 같아서 이것저것 다 챙겨줘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아이들은 도끼눈을 뜨며 소리친다. 한없이 착하기만 하던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사춘기에 막 접어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기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화목하고 모범적인 에발트 가족시이 있다. 에발트 부모는 여름방학을 맞이해 에발트의 영어 발음을 고치려고 에발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영국에서 교환 학생을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한 아이는 원래 오기로 한 톰이 아닌 톰의 형 재스퍼. 재스퍼는 알몸으로 온 집안을 걸어 다니고, 씻지도 않고, 케첩과 생선튀김만 먹는 ‘마귀 새끼’다. 빨간 머리 뚱보 재스퍼가 등장하면서 모범적인 가정과 이웃에 대한 체면치레에 목매는 에발트 부모를 쩔쩔매게 하는 사건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다.

 

*여름방학 불청객,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김재희, 양철북

 

국제 안데르센상과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지은 <여름방학 불청객>은 십대의 시선으로, 십대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불만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어른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서로의 모습을 알고 이해하는 소통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십대들의 언어로 때로는 권위주의적이고 때로는 위선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지은이는 어른들이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십대들의 생각들을 천진난만하면서도 날카롭게 펼쳐 보인다. 재미있는 이야기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시선은 아이들을 ‘성장하고 있는 인간’으로 대하지 않으려는 세상을 끝없이 뒤쫓는다.

 

자기 정체성이 성숙해가는 사춘기에 십대들은 늘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부모들이 아이를 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어린아이 취급하며 의견을 무시하는 매순간마다 십대들은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에발트는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성적 때문에 선생님에게 선물을 가장한 촌지까지 건네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치솟지만 말은 못하고 가슴만 친다.

 

✔ 엄마는 굳이 안 해도 좋은 변명을 했다. “사람마다 문제가 있는 건데,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를 때는 누구나 답답한 거야. 충분히 사정을 알고 나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이 말에 빌레 누나는 또 딴죽을 걸었다. “난 아니라고 봐! 그게 엄마의 문제라고 봐! 그냥 있는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줄 몰라서 그런 거야. 어떻게 세상 사람을 모두 엄마 방식으로 몰아가려고 해?” (…) “엄마는 꼭 엄마 마음에 드는 사람만 좋아하잖아. 착하고,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이어야 엄마는 인정해 주겠다는 거 아냐? 상대를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일 줄은 몰라. 상대한테서 내가 갖고 있는 기대치를 확인해야 내 마음을 주는 거지.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거야. (…)”

 

이 책은 이런 십대들의 다양한 얼굴, 감정들과 주제의식을 발랄하고 유쾌하게 풀어놓는다. 성교육의 ‘성’자도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부모를 보며 속으로는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체면을 살려주는 에발트나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재스퍼를 보며 기절 일보 직전인 엄마에게 “누드를 보는 게 즐겁지 않으신가요?”라며 골려대는 빌레는 사랑스러우면서 영악스럽다.

 

아이들의 꾐에 빠져 당황스러워 하는 부모들을 ‘재밌어 죽겠다’는 듯 킥킥대는 개구쟁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과 한마음이 돼 버린다. 수집한 돌멩이 한 보따리를 늘 곁에 둬야 하고, 집안을 알몸으로 돌아다니고, 생선튀김과 감자튀김, 케첩만 먹는 재스퍼의 가히 엽기적인 행동도 웃음을 유발하는 데 한몫을 한다.

 

이런 십대들의 반항은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진다. “제발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세상이 만든 편견과 고정관념, 어른들이 생각하는 ‘착한 아이’로 크는 것에 지친 십대들의 반항은 진짜 자신들을 사랑하는 법을 어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그들만의 소통 방식일 것이다.

 

감정을 제어할 줄 몰라 무슨 사고를 칠지 예측할 수 없는 재스퍼의 행동들은 사랑 받고 싶은 자기만의 표현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에발트 가족은 진심을 다해 재스퍼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마음의 벽을 두드린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고, 이를 마음으로 받아 안았을 때 마음의 벽 너머에 숨어 있던 아이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재스퍼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과정에서 에발트 가족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고 성장한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정말 의미 있는 소통’은 진짜 자신을 알고 표현하는 것, 서로 그 모습을 인정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다.

 

지은이는 어른들이 가벼운 체벌 정도로 여기는 폭력이 실제로 아이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로 다가온다는 것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고 갖고 있는 기대치를 확인해야 마음을 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십대들의 입을 빌려 꼬집는다.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감동이 어우러진 이 책은 십대에게는 해방감을 선사하고 어른에게는 십대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