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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구글은 '프리라이더'사회 2012. 8. 13. 10:26
[말의 가격]
이 세상의 진지한 미디어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출판사와 서점은 이제 책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없고, 신문사와 방송사 역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출판인으로 비영리 인문사회 출판사 뉴 프레스(New Press)를 이끌고 있는 앙드레 쉬프랭은 <말의 가격>에서 자본이 미디어를 위협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미디어를 구해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시도됐던 정책, 실험, 발상을 꼼꼼하게 살핀다.
지은이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형 미디어 그룹의 등장을 꼽는다. 신문사와 출판사를 인수한 대형 미디어 그룹의 경영자들은 미디어의 고유한 특성이나 개성, 공적 역할을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에만 열을 올린다. 이로써 미디어 자체의 속성을 변질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신문과 책이 독자의 외면을 받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우선 출판업이 본래 큰돈을 벌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고 말한다. 출판은 사업(business)보다는 직업(profession)으로 여겨졌으며, 아무도 출판이 대단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돈을 벌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계는 작은 이익에도 만족하던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였다.
그렇지만 거대 미디어 기업이 출판사를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출판업에는 본질적 변화가 생겼고 이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좋은 책의 출간이 아닌 높은 수익률이 출판사의 지상적 과제가 됐다. 출판인들은 자신들이 만족하던 소박한 이익이 아닌 투자회사가 기대하는 엄청난 영업 이익률을 달성해야 했다.
또한 대학 교수와 비슷한 연봉을 받았던 출판사 사장들은 이제 자신들의 연봉을 은행가와 비교하고, 편집자는 채용 면접에서 자신이 달성해야 할 매출 할당액이 얼마인지 물어본다. 출판사의 차별성을 드러내던 기획은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들 더 많이 팔 수 있는 책에 집중한다.
*말의 가격, 앙드레 쉬프랭, 한창호, 사회평론
'착한 출판사' 지원 프로젝트란?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출판사를 돕기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지은이는 대형 출판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책을 출간하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지방의 경우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책을 출간하는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독립 출판사를 돕는다. 프랑스도서협회는 훌륭한 기획의 책을 직접 구매하고, 도서관을 통해서 구매를 돕는다.
비영리 단체나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것도 출판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좋은 책을 출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결 압박이 덜한 대학 출판부도 독립적인 출판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시작한 출판활동이 프랑스 최고의 정치 관련 출판사로 성장했던 일화는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위태로운 독립서점, 어떻게 구할 것인가?
서점의 어려운 상황은 전 세계적인 현실이다. 프랑스 파리의 서점들은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대형 패션몰로 대체돼 갔다. 뉴욕의 서점 수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숫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대형 서점들은 독립 서점 바로 옆에서 아주 낮은 가격으로 책을 팔아 망하게 만든 다음, 다시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독립 서점을 없앴다.
지은이는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분명한 공공적, 문화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리 시에서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특정 지역의 가게를 서점이나 출판사로 임대하도록 유도한다. 지은이는 아예 특정 위치의 몇몇 가게를 시에서 소유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나 대학도 서점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형 출판사들이 서점을 직접 지원한다. 지역 도서관 내에서 해당 지역의 독립 서점들이 도서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지원도 귀를 기울일만한 의견이다. 또 대학 출판사가 인근 독립 서점에서의 구매를 권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벼랑 끝 종이신문, 희망의 빛은?
신문과 잡지의 쇠퇴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으로, 최근 몇 년간은 인쇄매체의 지속 가능성 여부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었다. 특히 미국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유명 신문사가 부도로 쓰러지고, 많은 신문사들이 큰 폭의 감원을 단행해야 했다. 지은이가 만난 신문업계 종사자들은 그저 “자신이 퇴직할 때까지만” 신문이 지속됐으면 하는 절박한 바람을 고백한다.
미국의 경우, 종이 신문 발행부수가 크게 줄면서 기자들의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당연히 취재의 질은 낮아졌고,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연성 기사가 지면을 채우게 됐다. 탐사보도나 심층취재는 갈 곳을 잃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던 언론의 본연의 기능은 신문사의 새로운 주인이 된 대형 미디어 기업 경영자의 안중에는 없었다.
그러나 젊은 층에게 신문을 대신하고 있는 웹은 선정적이고 질 낮은 콘텐츠로 가득하며, 신뢰성도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점차 ‘편파적이고 그릇된 주장을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오히려 웹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훈련된 인력이 만들어 내는 심층 기사와 사회에 대한 정제된 분석은 웹이 대신할 수 없는 신문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으로서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신문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은 독자를 되찾아 오고, 신문의 중요성을 사회에 환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비영리 탐사보도 회사 <프로퍼블리카>는 주류 언론이 무시하는 화제를 취재해 창립 4년 만에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학과 연계를 맺고 지역 신문사에 기사를 제공하는 활동이나, 기자로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신문사에게 신입 기자의 연봉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아마존과 구글의 무임승차, 보기만 할 것인가?
지은이는 구글과 아마존이 올리고 있는 수익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다시 묻는다. 기사를 취재하거나 편집하지 않았으면서도 기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구글, 책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저자의 인세를 가져가는 아마존의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부터 공익적 목적으로 개발된 웹을 이용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구글에 웹의 공익적 역할을 일깨우고 공공 목적의 과세를 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장인 로버트 단튼은 아예 구글의 데이터베이스를 공적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자는 주장을 편다.
또한 지은이는 구글과 아마존이 신문사와 출판사에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공공적 목적의 정부 과세를 통해 기존 미디어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자본과 미디어의 관계를 갈등과 대결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불안한 경제 속에서도 정부에 기대해봄 직한 정책들, 시민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발상들로 독자를 설득한다.
책에 나타난 대형 미디어 기업의 인수나 자본의 간섭은 우리의 미디어 시장에도 진행 중인 위기이며 더욱 거세게 닥칠 현실이다. 작지만 차별성 있고, 다양한 시선과 균형 잡힌 눈을 갖게 하는 미디어를 지켜내기 위해 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은 지은이가 스스로 거대한 자본의 압력에 맞서며 체득하고 짚어낸 것들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과 출판이 사회의 발언대, 다양한 시각의 소통을 위한 도구,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시대에, 민주주의는 결국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를 향한 자본의 위협이 거센 이 시대, 지은이는 우리의 미디어,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결국 시민의 노력과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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