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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아버지 학교>詩냇가 2013. 6. 3. 14:58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수염이 검어졌습니다.
양날면도기가 차갑게 턱 선을 내리긋고 지나갔습니다.
살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손쉬웠습니다.
한 면은 거칠었고 한 면은 잘 들었기 때문입니다.
날 선 쪽으로 삭삭, 두어 번 베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루코 면도날을 반쪽만 잘라 엇갈아 끼우셨습니다.
아버지는 무딘 쪽만 쓰셨습니다.
면도기를 함께 쓰다니, 다 컸구나.
기념으로 소주도 몇 잔 받았습니다.
잘 드는 쪽이 네 거다.
아버지의 마음 한쪽을 상속받았습니다.
/ <아버지 학교> 중 ‘면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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