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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꽃보다 붉은 울음>詩냇가 2014. 1. 6. 09:54
눈 나리는 날 아침에
정월 초하룻날 설날이 되었다
잠에서 눈을 떠
창문을 열고 보니 폭설이 내려서
온 바다를 흰눈이 덮었고
은빛 찬란함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더라.
눈 나리는 날에 가장 좋아하던
우리 집 바둑이는 천지를 돌아다니며
뒹구르며 좋아하며 짖는 그 소리가
노래같이 들리더라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랍더라.
장독 위에는 소복소복 쌓인 눈이
연꽃같이 희고 아름다웠더라
대밭의 댓잎에서는 흰눈이
소복소복 쌓여서 칼끝과 같이
쪼삑쪼삑 하였더라.
소나무에도 많은 눈이 쌓여서
목화같이 보이기도 하고
눈꽃같이도 아름다웠고
좋게 보이더라.
우리 집 지붕 끝에는 고드림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보기에 경치가 좋았더라.
나는 설날의 음식과 떡국으로 차려서
아랫마을의 할머니 집으로
세배를 나섰더니 눈 속에서
길을 몰라 헤맬 때
바둑이가 내 앞에 뛰어와서
길을 인도하였더라.
그 후에 사랑하는 임과 함께
큰 눈덩이를 만들어 굴리고
눈사람을 만들어
머리에는 고깔을 씌우고
임과 둘이서 어깨 손을 얹어
사진을 찍으며 기뻐하였더라.
그리고 눈덩이를 만들어
서로 던지며 때리며 싸움이 벌어져
어린아이 같은 동심으로
돌아갔더라.
넘어지며 엎어지며 미끄러질 때마다
사랑하는 그대의 두 팔로
안아 일으켜 줄 때마다
눈 속에서도 그 따뜻한 사랑이
우리의 정으로 더 깊이 들더라.
팔십 평생을 살아도
눈 나리는 이 날이
잊혀지지 않고
옛 추억이 그립더라.
눈 나리는 어느 날.
/ 김성리 <꽃보다 붉은 울음> ‘눈나리는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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