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이야기]


<지데일리> “예술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며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리라.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선물, 바람직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답하리라. 내 생각에 자존심이 있고 쾌적한 상태로서 좋은 집과 책을 즐기는 것은 모든 인간 사회가 지금 열심히 갈구해야 할 기쁜 목표이다.


<아름다운 책 이야기> 이광주 지음ㅣ한길사 펴냄


<아름다운 책 이야기>는 최근 윌리엄 모리스의 오리지널 책들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것을 기념해 그의 책을 유럽 책 문화의 역사 속에서 되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시인이면서 소설가, 예술가로서 언제나 소박한 예술을 꿈꾸었던 윌리엄 모리스. 그는 ‘만인이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특히 생활예술이 만인을 위한 예술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술이라는 말을 그림이나 조각 혹은 건축물만 의미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단지 예술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예술이란 훨씬 많은 것을 내포한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의해 생겨나는 아름다움이며 인간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의해 생겨나는 아름다움이며 인간이 대지 위에서 환경 전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얻는 감흥의 표현이다. 삶의 기쁨이 내가 말하는 예술이다.


모리스는 생활예술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벽지,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가구, 책 등 일반 민중들 누구나 사용하고 영위하는 생활 주변의 사물들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노동자 누구나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일반인에게는 벽지 디자이너로,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판타지 소설의 선구자로 불린다. 아울러 고서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그를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위해 재정적인 파탄까지 감수했던 ‘책의 장인’으로 부른다. 그는 아름다운 책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모리스가 말년에 책을 향한 열정으로 창립한 켐스콧 프레스의 53종 66권의 책은 평생 고딕적인 것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던 그가 쌓아올린 고귀한 대성당이었다. 켐스콧 프레스의 책은 수많은 애서가와 장서가들에게 ‘환상의 책’으로 여겨졌으며,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모리스는 존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순수 자연적이며 질박한, 그러면서도 서사시적 상상력으로 가득 찼던 고딕 공동체를 염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딕성당에 매료된 그는 일생 동안 고딕적인 것에 경도됐다. 그에게 중세의 사본은 고딕성당과 나란히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1870년부터 중세와 초기 인쇄본의 서체나 장식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서체와 채식을 배우고 연구해 그만의 독특한 서체와 장식을 만들고자 했다. 


아름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평생의 바람은 1880년대 후반부터 불붙기 시작해 그의 나이 쉰여섯 살, 이미 병마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을 때 정점을 찍게 된다. 이러한 책을 향한 그의 열망은 결국 책 공방 ‘켐스콧 프레스’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켐스콧 프레스의 창립은 ‘아름다운 책’ ‘이상적인 책’을 향한 모리스의 죽음에까지 이른 열정과 집념의 소산이었다. 


켐스콧 프레스는 1898년 완전히 문을 닫을 때까지 모두 53종 66권의 책을 만들었으며, 종이 인쇄 2만1401부, 벨럼 인쇄 677부의 ‘아름다운 책’을 출간했다. 그 중 중세의 작품이 22점, 근대 문예작품이 13점, 모리스 자신의 작품 23점이 포함돼 있다.


켐스콧 프레스에서 간행된 책들은 제작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그 책들은 당시에도 소유하기 벅찰 정도로 값비싼 책들이었고, 오늘날은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귀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모리스가 만든 책들은 그의 장인정신이 빚어낸 빛나는 유산이며,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로 평가된다.


켐스콧 프레스의 책들은 발매되기 전부터 예약주문이 밀려와 모두 팔렸을 만큼 당시 애서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의 87점에 달하는 삽화를 직접 그린 번존스는 <초서 작품집>을 가리켜 “이제까지 인쇄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윌리엄 모리스가 달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더라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극찬했다. 



‘아름다운 책’으로의 여정 


모리스는 좋은 책, 아름다운 책을 사들이고 곁에 둠으로써 쾌락을 즐기는 책의 에피큐리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수집할 때 늘 그것이 그의 책 제작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를 항상 고려했다. 그는 15세기 독일·이탈리아·프랑스·네덜란드의 주요 인쇄소에서 제작된 책을 열성적으로 수집했다. 특히 모리스의 장서 중 태반은 고딕체로 인쇄된 15, 16세기 독일·이탈리아의 삽화가 든 책이었다. 그가 고딕 활자체와 그 서법을 각별히 귀하게 여기고 켐스콧 프레스의 책에 썻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한 서지학자는 모리스를 영국의 웬만한 문필가들보다도 더 훌륭한 장서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소장한 책들이 단지 책 제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리스가 공방의 창설에 맞춰 착수한 첫 번째 작업은 활자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직접 활자체를 만들고, 신중하게 종이를 골랐으며, 노련한 인쇄 장인 윌리엄 보덴을 영입해 최고의 책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직접 책의 테두리장식과 장정, 이니셜을 디자인했으며 최고의 화가들에게 삽화를 맡겼다. 그 중에서도 옥스퍼드 대학시절부터 평생의 맹우가 되는 에드워드 번존스는 켐스콧 프레스에서 출간된 책 12종의 삽화를 그렸다. 


모리스는 자신의 공방에서 만든 모든 책들을 손수 디자인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식을 그렸던 것이다.


모리스는 일생을 통해 세 가지 활자를 제작했다. 그 중 골든체로 알려진 로만체를 제일 먼저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 서체의 모델로 삼은 것은 니콜라스 젠슨의 서체였다. 모리스는 골든체에 이어 트로이체(고딕체), 초서체 활자를 만들었다. 


모리스는 이 세 활자 중 가장 큰 트로이체를 좋아했으며, 최고의 성공작으로 여겼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부득이 이 서체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초서 작품집>에 사용한 이른바 초서체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내 쪽을 향했을 때 깊은 멜랑콜리로 감싸인 모습은 아득히 먼 나라를 엿본 듯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그것에 깊이 감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비할 바 없이 고독한 사나이의 모습이었다. 기억이 이어지는 한 그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삶을 건 큰일을 끝낸 마에스트로의 슬픈 고독이었을까. <초서 작품집>이 완성되고 몇 달 뒤인 10월 한가을에 모리스는 세상을 떠났다.


<초서 작품집>은 이후 모리스가 세상을 떠난 1896년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동시대 사가판 공방의 명문인 애셴덴 공방의 <단테 작품집>, 도브스 공방의 <성서>와 더불어 근대 인쇄본의 3대 아름다운 책으로 손꼽힐 정도로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기록된다. 


모리스가 켐스콧 프레스를 창립한 가장 큰 목표는 초서 작품의 완벽한 출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에드워드 번존스에게 “죽기 전에 완전한 초서를 인쇄하고 싶네. 서체와 테두리장식은 나도 할 수 있지만 그림은 그대밖에 아무도 그릴 수 없네”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오랫동안 고서를 수집하고 아름다운 책 문화에 매료돼 연구를 지속해왔던 이광주 선생이 쓴 이 책은 중세 사본에서 시작해 인쇄본의 시작을 알리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영원한 책의 장인 윌리엄 모리스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책’의 역사를 심도 있게 전개한다.


손정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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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

저자
이광주 지음
출판사
한길아트 | 2004-06-2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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