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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학 개념여행
    경제 2014. 7. 18. 17:31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당신의 강의는 지나치게 편향되었다. 당신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경제학은,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영구화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유발한 그 이데올로기 아닌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ㅣ김희정 옮김ㅣ부키 펴냄


    2011년 11월 2일 미국 하버드대학 샌더스관 앞에 모인 수십 명의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교수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학생들로부터 수모를 당한 교수는 그레고리 맨큐, 다름 아닌 <맨큐의 경제학(원제 Principles of Economics)>의 저자다. 그러나 학생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여전히 하버드대학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 대학에서 경제학 기본 교재로 쓰이고 있다.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 이후 시장 만능을 설파하던 신자유주의와 이를 뒷받침해 온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비난과 회의감이 팽배해졌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 위기가 터졌는데도 대다수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의 무모한 팽창을 열렬히 지지해 온 인물들이다. 


    각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다원주의적 경제학을 위한 국제 학생 운동(International Student Initiative for Pluralist Economics)’으로까지 번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며, 산업계와 정책 현장에서도 현재의 경제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기본 체계를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쉽게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30년 가까이 경제학의 유일한 적자인 양, 주류를 자처하며 군림해 온 신고전파 경제학의 아성은 그만큼 굳건하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이런 시대의 상황이 부른 책이다. 이 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친, 또는 현실을 호도해 온 경제학을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이자 대중과 유리돼 일부 경제학자들의 전유물이나 지적 유희 대상으로 전락한 경제라는 학문을 생산과 경제 활동의 주역인 시민들에게 되돌리려는 데서 비롯됐다. 


    저자 장하준(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부추긴 주류 경제학 자체의 사고 구조와 이론적 문제점을 파헤친다. 즉 주류 경제학이 세뇌한 경제학의 정의와 개념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경제학 교과서들과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관점을 뒤집고 근본부터 재정립하는데 초점을 둔다.

     

    장하준 교수는 먼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오만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제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설명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도 대다수의 경제학 전문가들은 시장은 실패가 없고, 그나마 존재하는 시장의 사소한 결함은 현대 경제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는 2003년에 “공황을 예방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숨겼던 머리를 들어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위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여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점을 볼 때 경제학은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착가과 오만을 극명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착각과 오만이 현재 경제학계의 주류를 차지한 신고전학파가 경제학을 규정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신고전파는 경제학을 ‘희소성을 지닌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접근법을 모든 세상사에 적용한다. 


    신고전파가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관, 경제의 다기한 영역 가운데 오로지 소비와 교환을 중심에 둔 접근법은 경제를 파악하는 수많은 방법론이나 도구 중에 하나일 뿐인데, 이 도구를 물리학 법칙처럼 여기다 보니 도구를 이용해 다뤄야 할 대상(경제 현실)을 오히려 도구에 맞추려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는 격언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자연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과 달리, 인간은 자유 의지와 상상력을 지닌 존재이다. 외부 환경에 단순히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를 달리 조직하는 등의 노력으로 자기가 처한 외부 환경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하고, 종종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했다. “인간은 역사를 자기 손으로 만든다.” 경제학을 포함해서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모든 학문 분야는 이론의 예측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자연과학과 달리 경제학은 가치 판단이 들어가는 학문이다.’(116쪽)


    장 교수는 도구는 도구일 뿐, 경제학 자체는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특히 그는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그간 비주류로 치부돼 왔으나 사실은 경제사의 각 국면마다 현실 필요성에 부응해 마땅한 역할을 수행해 온 여러 경제학 방법론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가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철없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신고전학파를 또래 아이들의 일원으로 돌려보낸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경제학의 다양성을 융합하라


     


    이 책은 크게 ‘경제학에 익숙해지기’와 ‘경제학 사용하기’로 구성된다. 책은 우선 신고전주의 외에도 다양한 경제학적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와 얼마나 다른지를 통해 실제 세상의 변화에 따라 경제 이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자연히 수많은 경제학 방법들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경제학의 다양한 접근법을 소개하는 이 책은 신고전주의 학파는 오직 자신들만이 유일한 경제학인 양 우쭐대지만, 시장을 중시하는 학파만 해도 신고전주의 학파 외에 고전주의 학파, 오스트리아학파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장 교수는 오스트리아학파, 행동주의 학파, 고전주의 학파, 개발주의전통, 제도학파, 케인스학파, 마르크스학파, 신고전주의 학파, 슘페터 학파 등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주요 경제학파를 쉽게 정의해 준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현 상황을 과도하게 수용한다. 개인의 선택을 분석할 때 저변에 깔린 사회 구조, 즉 돈과 권력의 분배 구조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 없이 가능한 선택만 고려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많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 심지어 좌파 성향의 ‘리버럴’한 폴 크루그먼조차가난한 나라 공장의 저임금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 이와 더불어 신고전주의학파는 교환과 소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생산 영역을 무시한다. 그러나 생산은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이자 다른 많은 경제학파에서 얘기하듯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신고전학파의 이런 맹점을 두고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도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숲 가장자리에서 도토리와 산딸기를 교환하는 외톨이 인간들’을 분석하는 데나 맞는 이론이라고 비아냥거렸다.’(130~131쪽)


    ‘슘페터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그가 점쳤던 우울한 죽음을 맞는 대신 사실상‘더’역동적으로 변했다. 그가 이렇게 부정확한 예측을 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 기업가뿐 아니라 기업 안과 밖의 수많은 주체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 혁신 과정에 참여하는‘다른 선수들’의 역할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기에 슘페터는 개인 기업가들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잃고 시들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147~148쪽)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는 기업이다. 수십만, 심지어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수십 개 나라에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 말이다. 현재 200개 대기업이 전 세계 생산량의 10퍼센트를 생산해 내고 있다. 공산품 국제 무역의 30~50퍼센트가 기업 내 거래(intra-firm trade)인 것으로 추산된다. 여러 나라에 지부를 둔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 혹은 초국적 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 내에서 투입물과 생산물을 서로 이전하는 것이다. 태국 촌부리에 있는 토요타 엔진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일본이나 파키스탄에 있는 조립 공장에 ‘판매’하는 것은 통계에는 태국의 수출로 잡힐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시장 거래는 아니다.’(179쪽)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경제 이론은 저마다의 효용이 있으며 모든 이론 위에 군림하는 ‘절대반지’ 같은 이론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점으로 귀결된다.

     

    책은 이처럼 그간 과학을 표방하며 ‘경제학 제국주의’로 치달은 신고전학파가 수많은 이론 중에 하나일 뿐임을 지적하고 여러 이론들을 우리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경제학 자체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준다. 이와 함께 실제 세상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경제학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보여 준다. 말 그대로 ‘사용자 가이드(User's Guide)’이다. 


    ‘경제학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친해지기 쉬운 분야이다. 일단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초적인 이해가 생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는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새로 구입한 태블릿 컴퓨터의 사용법을 습득하는 등 인생의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능동적 경제 시민이 되는 것도 초반에 겪는 약간의 어려움을 넘기고 계속 연습하면 시간이 갈수록 쉬워진다.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바란다.’(445쪽)


    이 책은 철두철미하게 ‘우리 시대의 시민들을 위한 경제 입문서’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쓰였다. 기존 경제 질서를 바꾸기 위해선 평범한 시민들이 경제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30여 년간 세계를 휘저어 온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경제학 이론을 일시에 제압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자고 격려한다. 그러면서 금융 규제 완화, 복지 예산 삭감, 의료 개혁 등 많은 정책들이 우리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당에 경제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며, 시민들이 경제학자들에게 도전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주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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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

    저자
    히가시타니 사토시 지음
    출판사
    부키 | 2014-06-1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한 권으로 만나는 20세기 대표 경제학자 14명의 삶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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