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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집, 그리고 지식인공감한줄 2015. 10. 14. 20:28
서울 종로구 인사동 술집 골목에는 밤마다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들이 몰려들어 언어의 해방구를 이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며 비분강개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술버릇이다. 그 술집 골목 한복판에 '라파엘의 집'이라는 장애아동 생활시설이 있었다. 참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린이 20여 명이 거기에 수용되어 있었다. 시각·지체·정신의 장애를 한몸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중복장애아들이다. 술 취한 지식인들은 이 '라파엘의 집' 골목을 비틀거리며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전 한 닢 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파엘의 집'은 전세금을 못 이겨 2000년 종로구 평동으로 이사 갔다. '라파엘의 집' 한 달 운영비는 1200만 원이다. 착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1천 원이나 3천 원씩 꼬박꼬박 기부금을 내서 이 시설을 16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후원자는 800여 명이다. '농부'라는 이름의 2천 원도 있다. 바닷가에서 보낸 젓갈도 있고 산골에서 보낸 사골뼈도 있다. 중복장애아들은 교육이나 재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아주면 온 얼굴의 표정을 무너뜨리면서 웃는다. 인사동 '라파엘의 집'은 술과 밥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이 식당에는 지식인들이 몰려든다.
라파엘의 집은 2003년에 다시 종로구 체부동으로 이전했다. 이제는 작고하신 국민은행장 김정태님이 행장 시절에 은행원들과 함께 자원봉사 왔다가 장애아들의 생활과 시설 운영의 어려움을 살폈고, 4억 원 상당의 개인 재산을 기부했다. 라파엘의 집은 이 기부금에 또 약간을 보태서 지금의 건물을 장만했다. 라파엘의 집은 이제 전셋집에서 쫓겨날 걱정은 면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소액기부자들이 작은 힘을 보태서 힘겹게 운영비를 감당하고 있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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