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빈곤>은 근대 영국의 공업화의 전개와 전후해서 등장하는 노동윤리의 관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일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에 가치와 의미가 있는 시대. 소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역할이 없는 자유경쟁의 패배자로서 복지로부터, 커뮤니티로부터, 또 ‘인간의 존엄’으로부터도 배제된다.
이 책의 지은이 지그문트 바우만은 20세기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그는 20세기 격동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쉼 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저술해 온 포스트모더니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급속한 글로벌화의 진전에 입각해 쓰인 것으로 초판 발행이 1998년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동문제(특히 비정규 고용문제)와 그에 따라 생겨난 격차, 빈곤문제를 넓은 시야에서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빈곤이라는 현재적인 테마를 근대의 초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고도 균형 있는 시각으로 수록했다.
text Point▶ 지난날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영웅의 본보기였던 부자들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철저하게 지켰던 노동윤리의 긍정적 결과를 전형적으로 드러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례는 없다. 이제 숭배의 대상은 부 그 자체이다. 매우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보증하는 부.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부유층의 사람들이 흔히 부러움을 사는 것은 삶의 내용물?살 곳, 함께 사는 배우자?을 선택하는 놀라운 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마음대로 손쉽게 바꾸는 능력이다. 그들은 결코 진로를 바꾸기에 이미 늦었다고 후회할 것처럼 보이지 않으며, 그 부의 대물림은 결코 끝나지 않을 듯하고, 그들의 미래는 언제나 그들의 과거보다 내용면에서 풍부하고 훨씬 유혹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라는 구호가 우리의 의식을 휩쓸고 있는 지금, 근대사회 건설의 기초였던 노동이라는 말은 어쩌면 진부해 보인다. 대신 어느새 우리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말은 소비, 유동성, 엘리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빈곤이라는 말은 날이 갈수록 결코 진부하지 않다. 한쪽에서 부의 축적이 가속화되고 그 반대편에서 빈곤의 심화가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text Point▶ 역사상 처음으로 오늘날 빈곤층은 근심과 골칫거리일 따름이다. 그들의 불행을 보상하기는 고사하고 불행을 없앨 만한 의미가 없다. 그들은 납세자들이 지출하는 대가로 제공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익이 돌아오기는커녕 원금도 되돌려 받기 힘든 나쁜 투자처이다. 가까이 오는 것은 무조건 빨아들이고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 아니 어쩌면 문제만을 내뱉을 수 있는 블랙홀이다. 사회의 품위 있고 정상적인 구성원들-소비자들-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빈곤층은 전혀 쓸모가 없다. 아무도-지위와 발언권과 호소력이 있는 누구도-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관용원칙이다. 빈곤층이 빈민촌을 불 지르고 떠날 때 사회는 훨씬 잘살 수 있다.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기뻐할 것이다. 빈곤층은 필요 없고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큰 가책이나 망설임 없이 버려질 수 있다.
지은이는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근대가 어떤 동력에 의해 진행돼 왔으며, 그것이 단계마다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오늘날의 세상이 어떤 흐름을 지니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특히 우리가 왜 날이 갈수록 빈곤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며, 왜 두려움은 점점 커져 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데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