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어떤 이는 얕고 작은 수백 수천 번의 만남으로 삶을 채우기도 하며, 어떤 이는 단 한 번의 만남을 평생 움켜잡고 살아가기도 한다.

 

사진=내 인생을 바꾼 한번의 만남ㅣ안치용 지음ㅣ리더스북 펴냄≪내 인생을 바꾼 한번의 만남≫은 도종환, 최재천, 박원순, 승효상 등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사들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안치용은 명사들을 만나 취재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남을 미화하거나 애써 교훈을 찾아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보여줌으로써 ‘만남’의 의미를 찾아간다.

 

:::전설이든 일상이든 만남은 일종의 공습이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땅에는 폭격으로 움푹 파인 구덩이가 남는다. 삶은 그런 구덩이의 연쇄다. 어떤 이는 얕고 작은 수백 수천 개의 구덩이들로 삶을 채운다. 그렇게 세월을 쌓다 보면 구덩이들의 경계에 해당하는 흙이 무너져 내려 폭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평범한 구릉으로 변한다. 어떤 이는 한 번의 폭격을 평생 움켜잡고 산다. 깊고 커다랗게 파인 거대한 구덩이에 숨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이 구덩이의 테두리 흙이 무너져 내려 뾰족한 기억을 두루뭉술하게 굴릴 것이다.:::


 

이 책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부모, 스승과의 만남도 있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 연인이나 책, 숲과의 만남도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담금질되는지는 결국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끊임없는 만남과 관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는 결국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으며, 진정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기쁨을 발견한다”면서 “‘만남’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남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살펴보면, 우선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수많은 독자들의 아침을 잔잔하게 깨워주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격려로 탄생했다고 말한다. 취재기자와 정치인으로 만난 시절, ‘다독가’라는 공통점에 무엇보다 ‘인생의 책’이 같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대통령과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재회한다. ‘아침편지’라는 엉뚱한 외도를 할 때 이를 지지해준 것은 바로 김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자신의 삶 전반을 경영하는 데 기반이 된 것이다.

 

‘접시꽃 당신’으로 알려진 도종환 시인도 야인으로 10년을 세상과 싸우며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시집의 성공도 잠시뿐 아내는 아이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전교조 활동으로 10년을 해직교사로 지낸다. 수굿한 나이에 다시 교단에 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율신경실조증이란 병마가 들이닥친다. 도 시인은 고통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을 떠나 숲과 만나 숲에서 살며 검소하고 간결한 삶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가 엮어가는 삶의 매 순간에 ‘만남’이라는 기회를 통해 친절하게도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까지 끼워 넣는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도 당시 청와대 1급 비서관이었던 고도원 이사장이 매일매일 글을 써내야만 하는 일이 힘들어 포기했다면, 도종환 시인이 외롭고 적막하기만 한 숲에서 지내며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리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책은 이렇듯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 뜻하지 않은 만남을 어떻게 결정적 인연으로 바꾸어놓았는지, 그 만남의 감도를 최고로 끌어올리기까지의 명사들의 노력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명사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결국 만남은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결국 변화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노력과 만남을 바꾸려는 의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