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손문상과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가 70일 동안 남미 여행을 하며 동거 동락했다. 굳이 세대 간의 갈등을 떠올리지 않아도 이들의 조합은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 한 사람은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글로 세상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사진=뜨거운 여행ㅣ박세열, 손문상 지음ㅣ텍스트 펴냄 손문상은 지금도 체 게바라와 혁명의 추억을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왔다고 한다. 박세열 역시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인물. 이들 사이엔 체 게바라라는 묵직한 존재가 있었고, 그것이 둘 사이를 든든하게 묶어 남미로 이끌었다.

 

인터넷 뉴스 <뉴스툰>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각자 일자리를 옮긴 후인 2007년 겨울, 서울 시내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체 게바라로 거듭난 ‘남미 여행’이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일정을 좇아 남미로 떠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그들은 남미로 향했다.

 

두 사람은 1951년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여행한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을 차례로 여행했다. ≪뜨거운 여행≫은 그 여행의 결실이자 또 하나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인 셈이다. 손문상은 눈물과 가슴으로 그린 그림과 만화, 사진을, 박세열은 땀과 발로 쓴 글을 여정의 기록으로 책에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체 게바라를 되살리려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혁명을 다시금 일깨우고자 하는 마음은 더군다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들은 그저 체 게바라로 난 길을 따라 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두 사람은 희미하게나마 체 게바라를 만나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좇은 남미 땅에서 오히려 체 게바라를 잃어버린 듯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있는 체 게바라의 생가에서도, 아르헨티나 곳곳의 체 게바라 박물관과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체 게바라로 변신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던 페루의 산 파블로 한센인 마을에서도,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활약한 게릴라 산채에서도 체 게바라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여행이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경로를 답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여행에서 어떤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밀려왔다. 그러나 60여 년 전의 체 게바라와 함께라면 결코 ‘결말’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체 게바라를 안고 떠난 여행에서 체 게바라를 분실한 것 같았다.

실눈이 떠진 것은, 여행에서 보낸 시간만큼 길어진 수염을 붙이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였다. 엄청난 촛불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2008년 1월 20일, 눈 내리는 풍경을 뚫고 출발했던 여행의 결말 아닌 결말은 거기 있었다. 20세기의 ‘혁명’과 21세기의 ‘혁명’의 차이는 촛불의 물결이 출렁이는 정도의, 그 ‘더딤’에 있지 않을까. 요컨대 내 여행의 종착지는 쿠바가 아니라 광화문이었고, 분실한 체 게바라를 그곳에서 다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그들이 체 게바라를 마주한 곳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엄청난 촛불들이 가득 메운 서울 거리에서였다. 체 게바라를 남미의 여행길이 아닌 무수한 촛불이 밝혀진 광화문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그가 우리 안에 뜨거운 그 무엇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